|
▲ 선지훈 신부가 8일 은관문화훈장을 받은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선지훈(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서울분원장) 신부가 8일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국외 소재 문화재 국내 반환과 국내 유형문화재 및 무형문화유산 보존, 문화재 관련 저술 및 자문 활동의 공적을 인정받아서다.
선지훈 신부는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에 소장돼 있던 「겸재 정선 화첩」의 국내 반환을 성사시킨 주역이다. 선 신부는 독일 유학 시절인 1999년 상트 오틸리엔 소장 「겸재 정선 화첩」이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회사가 경매가로 50억 원을 제시하며 오틸리엔수도원에 접근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뮌헨대학교에서 동문수학한 신임 예레미아스 슈뢰더 대수도원장을 찾아가 오틸리엔 연합회 한국 진출 100주년을 기념해 한국 반환 필요성을 끈질기게 설득해 2005년 10월 왜관수도원에 영구 대여하는 형식으로 「겸재 정선 화첩」 국내 반환을 성사시켰다. 선 신부는 문화재청과 긴밀히 협의해 「겸재 정선 화첩」을 국립중앙박물관에 맡겼다.
선 신부는 또 100년 전 한국 토종 식물표본 420점을 2006년 국내 반환해 국립수목원에 맡겼다. 이 식물표본은 일제 강점기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소속 안드레아스 엑카르트 신부가 1913년 한국에서 채집한 것으로 현재 거의 남지 않은 매우 희귀한 자생종들이다. 독일에서는 식물표본의 영구 반환 방식에 반대가 많았으나 선 신부의 적극적인 설득으로 상트 오틸리엔수도원에 10여 점만 남기고, 왜관수도원에 영구 반환하기로 했다. 선 신부는 2006년 10월 이 식물표본을 직접 가지고 귀국했고, 2015년 4월 예레미아스 슈뢰더 총아빠스 방한 때 보존 처리 및 연구, 활용을 위해 국립수목원에 맡겼다.
선 신부는 아울러 1930년대 기록물인 「가톨릭소년」 36권을 1997년 국내 반환했다. 연길교구에서 1936년 창간부터 1938년 폐간까지 3년 동안 간행된 「가톨릭소년」은 1930년대 한국 아동문학과 문서 선교의 실체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또 천재 시인 이상의 동시가 실려 있는 등 국문학에서도 중요한 자료이다.
한국 최초의 서양식 양봉 교재인 「양봉요지」을 발굴하고 반환받는데에도 선 신부는 힘을 보탰다. 「양봉요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양봉 교육 교재로 독일인 카니시우스 퀴겔겐 신부가 1918년 서울 성 베네딕도회 백동수도원에서 한글로 쓴 80쪽 분량의 책이다. 그간 국내 학계에서 그 존재는 알았으나 진본을 볼 수 없었다. 선 신부는 독일 유학 중 교황청 선교 기록물 도록에서 이 책이 독일 수도원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후 여러 수도원을 방문하면서 책의 행방을 찾았으나 상트 오틸리엔수도원처럼 협력이 쉽지 않아 조사를 더 진행할 수 없었다. 한국인이 자신이 직접 찾는 데는 여러 장애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선 신부는 독일인 바르톨로메오 헨네켄 신부에게 협조를 요청했고, 그는 2008년 독일 뮌스트슈바르자흐수도원 고문서고에서 「양봉요지」를 찾아냈다. 2018년 1월 왜관수도원장 박현동 아빠스가 칠곡군, 국외소재문화재단과 협업해 독일 뮌스트슈바르자흐수도원으로부터 영구 대여 방식으로 반환했다.
선지훈 신부는 1966년 5월에 완공된 칠곡 왜관성당을 근ㆍ현대 건축물 문화재 등록 사업을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추진해 국가등록문화재 727호로 지정되도록 했다. 또 왜관 순심여중고와 왜관초등학교 사이의 옛 골목길을 구상 시인과 이중섭 화백의 우정의 거리 조성 사업을 2019년 최초 발의해 현재 추진 중이다.
선 신부는 아울러 「노르베르트 베버의 마음을 읽다」 「상트 오틸리엔 연합회의 한국 선교- 눈먼 이에게 빛을」 「안드레아스 엑카르트」 「겸재 정선 화첩의 귀환 여정- 사랑과 존경과 신뢰가 담긴 이야기」을 저술했고, 국립중앙박물관 운영자문위원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자문으로 활동하면서 우리 문화재 반환과 보존 사업에 헌신하고 있다.
선 신부는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소장 겸재 정선 화첩과 식물 표본 국내 반환은 한국과 독일, 두 나라 사람들이 쌓아온 신뢰와 존경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며 “올해 사제 수품 25주년이 되는 해인데 그동안 문화재와 관련한 여러 활동을 해온 수고를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고 또 감사하다”고 말했다.
선 신부는 “문화재 반환은 민ㆍ관 협력이 중요하다”며 “앞으로도 한국과 독일 수도원, 또 두 나라 간 신뢰를 쌓는 데 이바지하고 싶다”고 밝혔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