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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해야(오창익, 루카,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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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탄생은 지금도 세계가 함께 기뻐하는 경사였다. 성탄에 대한 여러 낭만적 서사와 달리 실제 상황은 서럽기만 했다. 산모는 한시가 급한데 낯선 곳에서 몸을 풀어야 했다. 몸을 누일 곳조차 마땅치 않았다. 출산은 사람의 공간이 아닌 짐승의 공간에서야 가능했다. 루카 복음 말씀처럼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기 때문(2,7)이다. 돈이 있었으면 들어갈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을 거다. 갓난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어 놓은 부모의 마음은 어땠을까? 가장 낮은 곳에서 구세주가 나셨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예수가 나신 곳은 그래서 더없이 숭고하지만, 한편으로는 서러운 공간이다. 이주민이라도 가축에게 먹이를 담아주는 그릇에 아기를 눕힐 수는 없는 일이다.

아픈데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람도 서럽다. 돈 때문에 진료받지 못하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다.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헌법 제36조 3항 규정처럼 국가는 국민의 건강을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국가의 역할은 부족했다.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65.3(2020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87이니 갈 길이 멀다. 문재인 정부는 70까지 올리겠다고 다짐했지만, 스스로 정한 목표에도 이르지 못했다. 건강보험 보장률을 더 많이 올리지 못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지만, ‘문재인 케어’를 통해 의료비 부담이 큰 중증 질환이나 어린이, 어르신, 저소득층에 대한 보장성이 나아진 것은 중요한 성과였다. 보장성 강화로 시민의 의료비 부담은 줄어들었다. 그만큼 숨통이 트이게 되었다.

누가 집권하든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국민적 과제다. 이걸 문재인 케어라 부르든 윤석열 케어 또는 다른 뭐라 부르든 상관없다. 병원 문턱에서 서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면, 아픈 사람들이 진료비 때문에 받는 고통을 조금씩이라도 줄일 수 있으면 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케어’가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면서 건강보험 보장률을 줄이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집권 8개월이 다 되어가는 윤석열 정권은 국정운영의 기본적 방향이 오로지 지난 정권 흔적 지우기라도 되는 것처럼 골몰하고 있다. 잘못이 있다면 바로 잡는 게 마땅하지만, 잘한 게 있다면 이어받아야 한다. 대통령에 누가 당선되느냐와 상관없이 국민의 삶은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정권이 싫다거나 상대를 비난하는 게 지지층을 결집하기 좋은 카드일지는 모르겠다. 그런 정치적 셈법만으로 국정운영을 가름할 수는 없다. 해야 할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을 엄격히 분리해야 한다.

건강보험 보장성 문제가 바로 그렇다. 윤석열 대통령이 끝내 건강보험 보장성을 낮추면, 중증 환자나 어르신들은 의료비 부담 때문에 고통을 받게 된다. 보장성이 낮아지는 만큼 시민의 의료비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건강보험이 엉뚱한 곳에서 새고 있다지만,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제대로 대응하면서 안전장치를 작동시키면 된다.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줄여나가는 국가 정책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

건강보험 보장성이 낮아지면 병원에 자주 가야 하는 사람들은 사영기업의 실손보험에 기댈 수밖에 없다. 대규모 보험회사들은 신나겠지만, 시민들은 더 비싼 보험료를 내고 보장은 덜 받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윤 대통령의 가장 적극적인 지지층이었던 어르신들이 가장 큰 부담을 지게 될 것이다. 대통령이 되자마자 적극적 지지층을 이렇게 배신한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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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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