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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기자 단상] 삶은 선택이다 / 최상원토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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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옷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어디에 살 것인가? 의·식·주는 시작과 끝이 선택이다. 선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것이냐, 저것이냐와 같이 서로 대칭적 선택(Choice)이며 다른 하나는 여럿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집중적 선택(Selection)이다. 전자는 양자택일로 단순하지만 결과는 상반되고, 후자는 복잡하지만 최악은 피할 수 있다.

삶에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과 선택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선택할 수 없는 것은 부모, 자식, 스승이다. 반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배우자, 친구, 신앙 등이 될 것이다. 선택할 수 없는 부모로부터 생명을 부여받고, 자식에게는 사랑을 전달하고 스승에게는 지혜와 지식을 배운다. 생명과 사랑 그리고 지혜와 지식은 삶의 과정에 반드시 필요하고 존재를 보전하는 요소들이다. 반면 선택할 수 있는 배우자로부터 겸손을 주고받고 친구들과는 나눔을 실천하고 신앙을 통하여 굳건한 믿음을 가질 수 있다. 겸손과 나눔 그리고 믿음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사회생활에 기반을 이루어 삶의 질을 윤택하게 한다.

일상생활에서 인간관계는 사랑과 미움, 겸손과 교만, 용서와 복수, 믿음과 불신이 교차하며 화합과 분열, 질서와 혼란, 평화와 전쟁의 원인이 된다. 사랑과 미움, 겸손과 교만, 용서와 복수, 믿음과 불신은 동전의 양면처럼 가까운 경계를 두고 존재한다. 경계를 넘나들며 일방적인 치우침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앙적인 인내와 극기가 필요하다. 인내와 극기를 통하여 사랑, 겸손, 용서, 믿음의 테두리 안에서 항상 머무를 수 있도록 하느님께 기도하며 도움을 청해야 한다.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올바른 선택을 찾아본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1)라는 사랑을,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 14,11)라는 겸손을,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라는 용서를,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마태 17, 20)라는 믿음을 가르치는 주님의 말씀이다. 온전히 믿음 안에서 믿음으로 살 때 꿈이 현실이 되어 참삶이 이루어 질 것이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상업주의 시대를 표현하는 광고 문안에 ‘순간의 선택이 십년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이것 또한 선택을 잘 하면 편리한 생활을 한껏 누릴 수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즉 제품 선택에 신중을 기하여 오랫동안 편리한 생활에 젖어들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현이라고 본다. 사람들이 모든 일에 편리한 도구를 선택하듯 신앙인은 주님의 뜻에 따라 주님을 중심에 둔 선택을 한다면 지상에서 천국을 경험하고 천상에서는 하느님 곁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 것이다.

주여, 나날이 선택의 순간이 다가올 때 주님을 따라 주님을 중심으로 결정지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고 도와주소서. 이 모든 것이 나의 이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웃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살펴주시옵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교만이 있는 곳에 겸손을, 복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불신이 있는 곳에 믿음을 북돋아 주소서. 아멘.
최상원 토마스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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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2-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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