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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하늘에 계신 아버지, 땅에는 언제 오세요?(조양제, 베드로, 원주교구 대화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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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주님의 기도를 하다가 이런 투정을 한 적이 있습니다. 땅에 사는 우리 인간들은 이렇게 살기 힘든데 왜 우리 주님은 하늘에서 안 내려오는 걸까? 참 철부지 같은 생각이지만 어떤 때는 삶이 너무 팍팍해서 이런 말도 안 되는 투정이 저절로 튀어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 공부를 하면서 저의 투정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깨닫게 됩니다. 사실 우리는 하느님의 존재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보고 싶다는 인간의 갈망이 하늘에 전달된 것일까요? 아니면 ‘저 녀석들이 내가 만든 놈들 맞아?’ 하는 어이없음 때문일까요? 하느님은 아드님을 어리석은 인간의 품으로 내려보냅니다. 그렇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땅에 오신 겁니다. 저는 그 명명백백한 사실을 알면서도 엉뚱한 투정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하느님과 소통하는 방법도 잘 모릅니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소, 독수리 등을 우상으로 모시다가 하느님께 큰 벌을 받습니다. 이런 멍청한 짓을 보다 못한 하느님이 아드님을 통해 하느님의 뜻과 하나가 되는 기도의 방법도 알려주십니다. 하느님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몸소 친절히 가르쳐주신 겁니다. 굳이 그렇게 고난을 받지 않으셔도 되었는데 인간이 겪을 극심한 고통을 다 감내하시고 하늘로 오르신 우리 주님, 그 고통을 통해 어리석은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신 우리 주님, 하느님은 당신 아들을 인간의 죄를 씻어줄 속죄의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인간과 조금 더 가까워져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신 겁니다,

성경의 진주라고 하는 로마서 5장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구절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환난이 자랑이라고? 무엇 때문에 자랑이라고 할까? 환난은 어떤 환난을 이야기할까? 아, 예수님의 그 희생을 말하는구나. 그렇죠. 어리석은 인간은 가장 쉬운 진리의 말도 이렇게 늦게 깨닫습니다. “내가 너희를 구원하기 위해 하늘에서 땅에 내려와 몸소 환난을 겪었으니 이 얼마나 큰 기쁨이고 자랑이겠느냐?” 이런 꾸지람이 제 머리에서 가슴까지 초고속으로 내려옵니다. 혼내시지만 애정이 듬뿍 담겨 있다는 걸 잘 압니다. 그래서 머리를 긁적이며, 가슴을 세 번 치며 그 말씀을 제 영혼의 에너지로 흡수합니다.

인간의 삶은 눈뜨는 그 순간부터 죄의 유혹 앞에 그대로 노출되고, 하루에 수십 번 죄를 짓고 삽니다. 주님이 우리 죄를 대신 씻어주신 그 엄청난 일을 하셨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죄를 적립식 통장에 복리로 쌓고 있습니다. 물론 주일에 성당에 가서 잠시 고해를 통해 그 죄를 탕감받지만, 그 순간일 뿐, 늘 죄를 반복해서 짓는 자신을 보면 양심이 찔려 가슴이 아파옵니다. 나 자신도 추스르지 못하면서 남 뒷담화는 얼마나 많이 하는지. 이런 나약한 인간의 모습 때문에 하루에도 몇십 번씩 하느님을 찾게 되나 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말씀을 통해 만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이미 땅에 내려와 있습니다. 하늘만 멍하니 올려다보고 언제 내려오세요 투정부릴 게 아니라 성경 말씀 속에서 하느님을 자주 만나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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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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