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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간 한국에서의 소임을 마무리하고 이탈리아 총본부로 떠난 타므랏 신부가 이기헌 주교 축복장과 동두천시장 감사패를 들어보이고 있다. |
이주민들과 동고동락하던 타므랏 디파 요셉(Tamrat Defar Joseph, 꼰솔라따 선교수도회) 신부가 1월 7일 한국을 떠났다. 2002년 3월 처음 한국 땅을 밟은 지 꼬박 20년 만이다.
에티오피아 출신으로 영국 미들섹스대 산하 런던 선교교육원에서 선교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한국으로 와 이주민들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투신했던 타므랏 신부는 이날 이탈리아 총본부로 돌아갔다.
선교지와 소임은 전적으로 수도회 뜻에 따른다. 20년 전 타므랏 신부 역시 한국으로 발령 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한국은 아프리카 출신이 많지 않고 언어도 어려워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며 “하지만 기존에 있던 유럽, 남미 출신 신부님들과 한 공동체에서 형제애를 나누는 모습을 한국 신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기꺼이 순명했다”고 회상했다.
타므랏 신부는 이후 관구장까지 역임하며 공동체 안에서 형제애를 실천했다. 더불어 그는 늘 이주민들 곁에 있었다. 그 역시 타국에서 온 까만 얼굴의 이주민이었기에 누구보다 그들의 처지를 잘 공감했다. 이주민 쉼터를 마련해 가족과 같은 울타리를 제공했고, 주변 한국인들과도 가깝게 지냈다. 타므랏 신부는 지역사회에 녹아든 이주민들의 모습을 이렇게 전했다.
“쉼터 옆집에 90세 한국인 할머니가 사셨는데 어느 날 치매에 걸리셨습니다. 그때 유일하게 알아본 사람이 한국인도 아니고 우리였습니다. 아들처럼 대해주셨어요. 우리가 집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서야 잠이 드실 정도였으니까요.”
2012년에는 동두천 국제 가톨릭 공동체(DICC: Dongducheon International Catholic Community)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이주민과 한국인 간 가교 역할에 앞장섰다. DICC에는 나이지리아와 필리핀, 동티모르, 우간다, 짐바브웨 등 35개국의 이주민들이 활동하고 있다. 자체 프로그램으로 이주민 사목회를 구성하고 그들 스스로 전례와 행사 기획, 성가대 활동, 가정방문 등을 하고 있다. 봉사자들과 협력해 한글반도 운영했고, 교구와 연계해 체육 대회 및 문화체험, 성지 순례 프로그램에도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특히, 타므랏 신부는 이주민들에게 도움을 받는 데서 그치지 말고 지역사회에 봉사하기를 독려했다. 이주민들은 주변 거리를 청소했고, 지역 홀몸노인들을 방문해 집 정리를 돕기도 했다. 한 번씩 한국인들에게 음식도 대접했다.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시기에는 피해 극복을 위해 성금 100만 원을 동두천시에 기부했다. 타므랏 신부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21년 시장으로부터 감사패도 받았다. 그는 “받은 사랑을 지역사회에 돌려주는 차원”이라며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기억해줘서 부끄럽고 감사할 따름이다”고 밝혔다.
동시에 아쉬움도 전했다. 그는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인들이 하기 꺼리는 가장 힘든 일을 도맡아 하면서 건강한 젊은이들도 몇 년 일하면 몸이 망가지곤 한다”며 “대부분 본국의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고된 일을 참고 견디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가난을 겪어봤기 때문에 가난한 나라의 아픔을 잘 보듬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주민들의 출신 국가들도 지금은 가난하지만 언젠가 성장해 한국의 중요한 파트너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의 한국 생활을 되짚어보면 이러한 가교 역할에 중점을 뒀다고 생각해요.”
20년간 그가 남긴 흔적은 결코 적지 않다. 떠나기 전 인사차 방문한 공동체마다 눈물바다가 됐고, 국가별로 아쉬움과 고마운 마음을 담아 편지와 선물을 전달했다.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도 축복장을 수여했다.
“평생 한국에서 살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이 제가 살아야 할 몫이죠. 돌아보면 감사함만 남습니다. 이곳에서 만난 모든 이주민과 한국인을 기억하며 기도 안에서 살아가겠습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