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 해 생명윤리 분야에서 가장 뜨거웠던 쟁점은 의사조력자살 도입을 위해 지난 6월에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대표 발의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이하 법률안)이다. 한국 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는 성명서를 통해 “법안의 요지는 의사조력을 통한 자살이라는 용어를 조력존엄사라는 용어로 순화시켰을 뿐 치료하기 어려운 병에 걸린 환자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자살하는 것을 합법화”하고 있으며, “연명의료결정법 제정 이후 호스피스·완화의료에 대한 지원과 인프라 확충의 책임이 있는 정부의 정책적 노력을 지원하고 감시하는 데 무관심했던 국회가 다시 한 번 의지 없는 약속을 전제로 자살을 조장하는 법안”을 발의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 외 의료계, 종교계뿐 아니라 학계에서도 법률안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지속해서 나오고 있다.
지난 12월 2일에 개최된 한국정신종양학회의 추계학술대회에서도 발의된 법률안은 의료현장의 현실을 외면한 입법이라고 비판했다. 발표자 중 이석배 단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에는 자살할 권리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며,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김대균 교수는 “국민 70~80가 ‘의사조력존엄사’에 찬성한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가 용어를 존엄사에서 ‘의사조력자살’로 정확히 하고 다시 물었을 때 합법화해야 한다는 의견은 13 수준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충남대학교 내과 문재영 교수는 환자의 죽음에 일조하는 의사조력자살이 의료인 정체성까지 흔들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는 존엄한 죽음을 요구하는데 현장은 생애말기돌봄조차 제대로 해주기 어려운 환경에 의료현장은 환자의 죽음에 대한 의사소통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의사 70가 환자가 사망할 때마다 힘들어하고 간호사들은 번 아웃에 빠진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태에서 의사조력자살을 도입하면 완화의료 인프라는 축소될 뿐만 아니라 의학 자체의 위상과 목적, 의료인의 소명이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대 의료윤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드워드 펠레그리노(Edmund D. Pellegrino, 1920~2013)에 의하면, 환자는 단순히 질병으로 인한 기능 이상을 나타내는 존재가 아닌 온전성이 상실된 인간 존재이다. 그래서 의학은 인간의 건강과 치유라는 실천적 목적에 기여하는 학문으로서 이때 치유는 ‘다시 온전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질병의 치료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사회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영적 존재로서 환자의 선(善)을 확인하고 향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의 치료가 효과를 거두지 못한 채 고통 속에 있는 환자의 온전성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치료할 수 없는 것이 ‘돌볼 수 없다’와 결코 같은 말이 아니다. 오히려 치유는 돌봄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 돌봄의 중심에는 완화의료와 호스피스가 있다. 완화의료와 호스피스는 의학의 목적과 의료인의 소명이 분리된 별개의 활동이 아니다. 오히려 쇠락해진 육체적 상황에서도 환자는 자신이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고귀하고 존엄한 존재임을 자각하고 자신의 근원적 존재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고 격려하여 지지하는 고유한 의미가 있다. 이는 의료현장에서만 갖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디지털 문화의 발달로 개인적 고립을 가속하는 현대 사회에서 돌봄은 돌봄을 받는 자와 돌봄을 제공하는 자 사이의 인격적인 관계를 형성하여, 서로에게 인간 존재로서의 의미를 충만케 한다. 그래서 돌봄은 생의 말기 환자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존엄한 인간이 맞이하는 삶과 죽음의 시간을 보호하고 증진한다. 2023년 계묘년은 완화의료와 호스피스 인프라 확충뿐 아니라 바로 이 돌봄 문화 확산의 원년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