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르겔바우마이스터 홍성훈씨가 자신의 23번째 작품인 CPBC 파이프 오르간 앞에 앉아 활짝 웃고 있다. |
“완성된 모습을 보니 울컥해서 눈물이 났어요. 제 이름 걸고 파이프 오르간을 만든 25년 동안 이런 적은 처음이었죠.”
2023년 시작과 함께 탄생한 자신의 23번째 작품, CPBC 파이프 오르간을 두고 오르겔바우마이스터 홍성훈씨는 “유독 남다르다”고 했다. 기존 작업처럼 특정 장소를 찾는 사람만이 아니라, 방송을 통해 온 세상에 그 소리를 들려줄 악기인 까닭이다. 홍씨는 “이번 작품은 만드는 데 정말 힘들었다”면서도 “그만큼 너무 사랑스럽다”고 웃었다.
“지난해 2월 CPBC 파이프 오르간 제작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어요. 전쟁이 일어나 많은 사람이 고통받는 모습이 참 가슴 아팠어요. 이처럼 ‘평화’가 절실한 시기에 가톨릭평화방송을 위한 작업을 맡았다니, 이건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혈을 기울였죠.”
홍씨는 ‘평화’라는 무형의 가치를 파이프 오르간에 투영하고 싶었다. 파이프 오르간은 내는 소리뿐 아니라 겉으로 보이는 예술적 표현 역시 중요한 악기다. 그래서 그는 전면 상단부에 ‘평화의 상징’인 올리브 잎 조각을 달기로 했다. 비둘기가 싱싱한 올리브 잎을 물고 돌아와 노아의 방주에 희망을 전했듯, CPBC 파이프 오르간도 한국과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희망을 전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파이프 오르간에 정교한 나무 조각을 장식하기는 그도 처음이었다. 구상을 시작하고 화가와 조각가에 작업을 의뢰해 완성작을 받기까지 무려 6개월이 걸렸다. 파이프 오르간 제작 기간의 절반이 넘는 시간이다. 마침내 성령의 비둘기처럼 흰 파이프 오르간에 금빛 올리브 잎이 더해진 순간을 홍씨는 잊을 수 없다.
“지난 한 해 동안 얼마나 가슴 아프고 슬픈 일이 많았습니까. 저도 정말 무거운 마음으로, 힘들게 만들었거든요. 이제 CPBC 파이프 오르간이 내는 선율이 많은 사람의 아픔을 치유하고, 희망을 심어주면 좋겠습니다.”
오르겔바우마이스터 홍성훈씨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파이프 오르간을 제작한다. 개신교 신자인 그는 종파를 초월해 작업을 맡는다. 가톨릭에서 그의 작품이 있는 곳은 △광주대교구 임동주교좌성당 △서울대교구 논현2동성당 △화양동성당 △원주교구 배론성지 은총의 성모 마리아 기도학교 등이다. 홍씨는 “가톨릭을 위해 작업하는 것은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기쁜 일”이라고 전했다.
그가 파이프 오르간의 길을 걷게 된 배경도 가톨릭과 연관 있다. 30여 년 전, 클래식 기타를 배우러 독일로 유학 간 청년 홍성훈씨는 우연히 숙소 앞 뮌스터대성당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때 천장에서 장대비처럼 내려오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를 처음 들었다.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 정도로 충격적인 감동이었다. 홍씨는 이후 기타를 포기하고 12년간 파이프 오르간 제작을 배워 명장이 됐다. 그가 마이스터 과정을 밟은 곳은 바로 뮌스터대성당 파이프 오르간을 만든 ‘클라이스 오르겔바우’. 세계 최고 수준의 파이프 오르간 제작사다. 클라이스 가문이 4대째 140년 가업을 잇고 있다. 1932년 함경남도 원산 성 베네딕도회 덕원수도원에 설치된 파이프 오르간도 클라이스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