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에 가족들과 함께 영화 ‘탄생’을 보았습니다. 상영 시간이 2시간이 넘는 꽤 긴 영화였지만 어둠 속에서 몰래 눈물을 흘리며 지루하지 않게 봤던 기억이 납니다. 청년 김대건이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님이 되기까지의 그 과정을 같이 따라가며 ‘나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나라면 순교할 수 있을까?’ ‘왜 자꾸 눈물이 날까?’ 이 세 문장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처럼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뛰어난 언어 구사 능력, 바다에서 방향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지혜, 험한 길을 마다하지 않는 도전 정신 등 너무 똑똑하고 아까운 인재를 빨리 보낸 아쉬움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영화에서 보듯 신부님 한 분을 키우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최초의 신부님 탄생을 더 숙연하게 봤던 것 같습니다. 저는 요즘 성당에 가면서 걱정이 하나 늘었습니다. 신자들도 줄었지만 성당에 아이들 웃음소리도 잘 안 들립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곳이 시골 성당이어서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도심 속 큰 성당들에도 아이들 숫자가 확 줄었습니다. 물론 코로나19의 영향이 클 겁니다. 한때 토요일 청년 미사에 가면 새로운 활력을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예비 신학캠프에서 활짝 웃는 아이들을 보면 그냥 기분이 좋아지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예비 신학생 참여 숫자도 확 줄었고 신학교에 입학하는 학생 숫자도 한 자리를 넘기기 힘듭니다.
2022년 원주교구는 2명의 사제를 배출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너무 귀한 사제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그 숫자가 한 명으로 줄어듭니다. 서울대교구나 인천교구 등 대도시의 신학생 숫자를 보면 부러울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들어보니 그곳도 신학생 수가 많이 줄어서 걱정이 크다고 합니다. 언젠가 저에게 세례를 주신 신부님과 점심을 먹다가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은퇴하실 신부님들의 은퇴가 미뤄지고 있어요. 새로운 사제들이 많이 없어서….”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는 마태복음 한 구절이 저절로 생각이 납니다.
아이들은 왜 성당에 갈까요? 무언가 성당에 재미있는 게 많아야 자주 갈 겁니다. 얼마 전 ‘나룻배’라는 성소 소식지를 보니 신학생 중의 한 명은 예비 신학캠프의 프로그램이 너무 재미있어서 저절로 성당에 가고 싶었고 자연스럽게 신학생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부모들이, 우리의 성당이 그 길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결국, 성소를 키우려면 시작은 가정에서부터라 생각합니다. 엄마 아빠가 성당을 좋아하고, 기도를 좋아하고, 아이들이 그걸 따라 합니다. 그렇게 성가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성소를 키워가는 게 가장 올바른 방법 같습니다. 부족하지만 저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가족 간의 대화에도 주님의 말씀을 통해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주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하루를 완성해가는 그 모습이 우리의 성소를 키우는 첫걸음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대건 신부님도 시작은 가정이었습니다. 작년에 원주교구에서 탄생한 2명의 사제도 시작은 결국 가정이었습니다. 성소의 시작은 가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