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재진 바오로(신문취재부 기자)
어린이다웠다. 질문은 순수했다. 질문에 의도는 없었다. 그래서 어른이 던지는 질문과는 달랐다. 그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질문을 이어갈 뿐이었다. 어른이 듣기에는 어쩌면 대답하기 귀찮을 정도의 그런 질문 말이다.
서울 행당동본당 초등부 첫 영성체반 어린이들 이야기다. 행당동본당 초등부 첫 영성체반 어린이 14명이 12일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를 만났다. “천사와 악마는 있어요?”, “성당이랑 교회의 차이점은 뭐예요?”, “성당이 좋아요? 교회가 좋아요?”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어린이들은 질문을 쏟아냈다. 질문을 듣고 있자니 웃음이 났다. 그리고 곧 웃음이 나는 이유가 어린이의 시선에서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정순택 대주교는 어린이들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그들의 물음에 답했다. 그 순간 어린이들은 경청했다. 정 대주교와 눈 맞추며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중간에 끼어들거나 하는 일 없이 말이다. “질문도 잘 받아주셨고 아이들을 많이 사랑해주시는 것 같았어요.”, “교구장님을 만나서 기뻤고 이야기한 것도 재미있었어요.”,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다음에 또 오고 싶어요.” 어린이는 거짓말은 못 한다고 했던가. 만남의 시간이 끝나고 어린이들에게 들은 소감은 이러했다. 진정한 소통의 현장이랄까. 만남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하지만 어린이들의 소감은 만남이 어땠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 소통의 사전적 의미다. 소통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런데 소통이 잘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소통이 잘되지 않는 이유. 소통하려 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한 사람과도 소통하지 못하면서 전체와 소통할 수는 없다. 소통이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