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28일 정부는 ‘자유, 평화, 번영의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하고, 외교부 주최로 설명회도 개최했다. 보고서는 “대한민국은 인도-태평양 국가이다”라고 선언하고, 이 “지역의 안정과 번영은 대한민국의 국익에 직결된다”라고 강조했다.
인도·태평양이라는 명칭은 아직 일반 시민에게는 낯설다. 그보다는 아시아·태평양 또는 아태라는 말이 훨씬 친숙하다. 왜 굳이 익숙한 이름을 놓아두고 새로운 낯선 이름을 쓰게 되었을까?
그 이유로 우선 지난 몇 년간 인·태 개념이 빠르게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지역 개념으로 자리를 잡아 보편화 되어왔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인도양과 태평양을 아우르는 지정학 개념인 인도·태평양은 미국에서 2017년 말 이후 공식적인 전략개념으로 사용했다. 그전에 일본과 호주가 먼저 적극적으로 인·태 개념을 각자의 외교 전략에 반영했다. 특히 일본은 미국에 인·태 개념을 적극적으로 소개했다. 이후로 아세안(ASEAN)이 인도·태평양 전망 보고서를 펴냈고, 유럽연합(EU)과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주요 유럽 국가도 나름의 인도·태평양 정책을 발표했다.
이렇게 인도·태평양의 명칭이 보편화한 데에는 중국의 대외 행동이 공세적으로 변화한 점이 배경 요인으로 작용했다. 즉 부상하는 중국이 기존의 자유주의 세계질서를 수정하려 한다는 인식과 전망에 따라 여러 역내 국가들이 대응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중국의 수정주의에 대한 견제는 인·태 개념의 숨은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이번에 우리 정부가 인도·태평양전략 보고서를 발표한 데에는 여러 인도·태평양 국가와 보조를 맞춘다는 의미가 가장 크다. 그중에서도 특히 미국의 인·태 전략을 크게 의식하면서 어떻게 이에 협력할 것인지가 고민의 핵심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부의 인·태 보고서는 지역 내 협력 원칙 중 하나로 포용을 제시하며 가능한 범위 내에서 중국과 협력 가능성도 열어두었다. 이 점에서 중국 견제의 성격을 강하게 띠는 미국의 인·태 전략과는 일정한 차이가 있지만,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일시에 단절할 수 없는 우리로서는 불가피한 설정이다.
그런데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의 위치 설정 이상의 전략적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보고서는 “자유, 평화, 번영의 인도·태평양”이라는 비전과 “포용, 신뢰, 호혜”의 협력 원칙을 제시하고, “규범과 규칙에 기반한 인태 지역 질서 구축, 법치주의와 인권 증진 협력, 비확산·대테러 협력 강화, 포괄안보 협력 확대” 등 9개 중점과제도 제시한다. 하지만 정작 이러한 비전과 원칙과 과제를 어떻게 추진하고 이루어갈지에 관해서는 충분한 설명이 없어서 아쉽다.
인도·태평양이라는 지정학적 개념은 미국과 중국의 경쟁을 배경으로 등장하고 보편화 되었지만, 양국 이외의 주요 국가의 역할도 지역 질서의 향배에 중요하다. 물론 미·중 관계의 부침이 지역 질서의 성격을 일차적으로 좌우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 모두 다른 국가와의 연대와 제휴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어서 지역 내의 여타 주요 국가가 어떻게 대응하고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지도 무시하기 힘든 변수가 된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와 같은 중견국이 적극적으로 주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있고, 이를 위해서는 나름의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정부의 이번 인·태 전략 보고서는 사실상 비전 선포 수준에 그쳤지만, 앞으로 정부가 후속 작업을 통해 지역의 자유, 평화, 번영을 위한 보다 구체적 전략을 마련해 펼쳐갈 것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