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방비 폭탄’ 한꺼번에 오른 충격이 큰 데다, 최강 한파까지 겹쳐서 걱정이 많았다. 정부·여당은 지난 정부가 가스 요금을 제때 올리지 않아 생긴 탓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많이 달랐다. 문재인 정부 때 LNG(액화천연가스) 평균 수입가격은 t(톤)당 553달러였다. 이명박 정부(669달러), 박근혜 정부(591달러)보다 낮았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시기인 지난해 5월부터 12월까지는 톤당 1119달러였다.
가격이 올랐으니 요금인상이 당연하다 싶겠지만, 이게 바로 정부의 역할이 필요한 대목이다. 수입가격이 오르면 정부가 자금을 풀어서 요금인상을 최대한 낮추고, 나중에 수입가격이 낮아지면 요금인하 속도를 조절하며 그동안의 적자를 만회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쓸 수 있다.
여론이 나빠지자 정부는 취약계층과 사회적 배려 대상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늦게라도 심각성을 인식한 건 다행이지만, 사후약방문인 데다 찔끔 지원에 불과했다.
문제는 가스 요금만이 아니라는 거다. 전기요금은 역대 최대 규모로 올랐고 가스 요금도 다시 올린다고 한다. 대중교통요금도 일제히 오른다. 서울시 택시 기본요금은 1000원, 버스와 지하철은 400원 정도씩 올릴 거란다. 공공요금이 오르면 다른 물가는 더 빠르게 오른다.
어쩌면 더 심각한 문제가 우리 곁에 다가올 수도 있다. 바로 윤석열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다. 공기업이 제공하는 공항, 철도, 수도, 전기, 가스, 언론 등의 공공 서비스를 사영기업에 넘기자는 거다.
인천국제공항. 공항 서비스 평가에서 12년 연속 1위를 차지하는 최고의 공항이다. 화물운송 세계 2위 등의 실적도 엄청나다. 정부가 지분 100를 갖고 있는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운영한다. 공사 지분의 전부 또는 일부를 매각하려는 민영화 움직임은 이명박 정권 때 본격화했다. 당시 정권은 ‘공기업 선진화’라 불렀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고 일단 팔고 보자며 매각을 서둘렀다. 야당과 노조의 반대로 백지화되었지만, 민영화 꿈을 접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윤석열 정부의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공사 지분 40를 민간에 넘기자는 민영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민영화 문제가 지방선거 쟁점이 되자 짐짓 물러나는 모양이었지만, 기획재정부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의 오래된 꿈은 언제든 현실 정책이 될 수 있다. 사기업이 인천공항의 지분을 인수하거나 경영권을 갖게 되면, 그 기업은 대박을 터트리게 된다. 국제공항을 대체할 곳이 없으니 독점 특혜를 모두 누릴 수 있다.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고 공항 이용료를 맘껏 올리며 돈을 벌 거다. 그 부담은 공항이용객이 나눠서 져야 한다.
보수정권은 당장 막대한 매각대금을 챙길 수 있다며 민영화에 집착하고 있다. 재정 여력이 생기면 부자 감세를 할 수 있어 좋다는 거다. 민영화로 인한 문제가 불거지는 건 나중 일이니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식이다.
만약 가스공사를 민영화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회사의 이익을 위해 가스를 많이 쓰는 겨울에는 비싼 요금을 물리고, 덜 쓰는 여름에는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값싼 요금을 제시할 거다. 국민은 고작해야 돈벌이 대상일 뿐이다. 상상만으로도 두렵다.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민영화 이후 요금은 오르고 서비스 질은 형편없으며 잦은 고장으로 인한 열차 지연사태가 일상이 된 영국 철도의 교훈을 생각하면 답을 찾을 수 있다. 지금 겪는 가스 요금 인상이 ‘폭탄’이라면, 민영화 이후에 직면하게 될 현실은 그야말로 ‘핵폭탄’급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