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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관계의 나침반, 존중 / 이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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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뉴몰든 지역에는 남북한 사람들이 공존하는데, 함께 잘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으세요?” 우리 학교가 토요일마다 빌려 쓰는 교회의 피터 목사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내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한인 사회를 곁에서 보면 갈등이 제법 있는 것 같아요. 글쎄요, 관대함이 아니라 존중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피터 목사는 말했다. “관대함 혹은 관용은 사실 무엇을 용인하고 용인하지 않을 것인지, 또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를 힘을 가진 집단이 결정한다는 점에서 강자의 논리일 수 있어요. 1689년에 발효된 ‘관용법’(Act of Toleration)만 봐도 알 수 있죠. 이 법령으로 영국 국교회가 아닌 다른 개신교가 공개적으로 종교활동을 할 수 있게 됐지만, 그 관용의 한계는 분명했죠. 가톨릭은 인정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개신교도 예배드리는 것은 인정했지만, 국교도가 아니면 관직에 나갈 수 없다는 규정은 유지됐어요. 우리가 다른 이들과 함께 사는 데 필요한 것은 관대함이 아니라 ‘존중’일 거에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봐 주는 것, 마땅히 누려야 할 존엄과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요. 그래서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고 외치는 시위대들의 슬로건도 ‘존중하라’잖아요.” 수첩에 적었다. ‘존중(Respect)’.

남한 사람인 내가 북한 학부모를 만나 학교를 꾸려 나가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자꾸 다른 이의 말을 새긴다. 아버지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북한 사람들은 자존심이 세단다.” 아버지의 고향은 함경남도 신포이다. 전쟁 때 월남했다. 평생을 남한에서 살았는데도, 아버지는 자신을 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 나는 학부모를, 우리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만나야겠다.

메리놀 외방 전교회 함제도 신부의 말도 생각난다. 결핵환자를 돕기 위해 북한을 수없이 방문했던 함 신부는 이런 말을 했다. “북한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하려면 그들의 사고방식에 신뢰가 있어야 하고 한 걸음 한 걸음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우리 교회는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모든 사람을 존엄과 존중을 가지고 대하라.’ 북한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이지요. 그건 반드시 새겨야 하는 원칙이에요.” (함제도 신부 회고록 「선교사의 여행」 142쪽)

원칙은 아름답다. 현실은 다르다. 서로 이해하지 못해서 화나고 실망하고 섭섭하고 억울한 순간도 많다. 원칙을 다시 나침반으로 삼는다. 존중. 이 말이 길잡이가 돼 주길.
이향규 테오도라(런던한겨레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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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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