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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채봉 선생의 고향에 마련된 순천문학관 정채봉관을 찾은 정진 작가. |
해마다 1월 9일이 되면 서울 대학로에 있는 혜화동성당을 찾아갑니다. 돌아가신 제 스승님 기일이기 때문입니다. 혜화동성당은 스승님이 생전에 사랑하고 자주 가셨던 곳입니다. 그래서 저희 제자들은 1년에 한 번씩 이날 혜화동성당에 모여 위령미사를 드립니다. 올해는 1월 9일이 월요일인 까닭에 토요일인 7일에 특전 미사로 위령미사를 바쳤습니다. 제 스승은 바로 「오세암」으로 유명한 동화작가 정채봉 프란치스코 선생님입니다. 2020년 개봉한 김수환 추기경님의 어린 시절을 담은 영화 ‘저 산 너머’ 원작도 그분이 쓰신 「바보 별님」이었습니다. 스승님이 돌아가신 지도 벌써 22년이나 지났습니다.
제가 정채봉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1990년, 대학 졸업 후 단행본 출판사 편집부에서 일할 때였습니다. 그 무렵 선생님은 맑고 향기로운 글로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았습니다. 여러 출판사에서 원하는 작가였습니다. 저 역시도 정채봉 선생님의 책을 아주 좋아하는 독자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 어느 날, 우연히 신문에 실린 단신 기사를 보았습니다. 정채봉 선생님이 ‘문학 아카데미’에서 동화 창작을 가르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제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작가에게 글을 배운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무척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간 첫 수업에서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동화는 바로 예수님입니다.”
동심이 세상을 구원한다고 믿으셨던 정채봉 선생님은 “동화와 예수님과 동심은 함께한다”고 하셨습니다. ‘동화가 예수님이라면, 나도 쓰고 싶다!’ 그때 그 말씀을 들으며 저는 반드시 동화작가가 되고 싶어졌습니다. 정 선생님은 “예수님의 사랑과 빛을 드러내는 이야기, 예수님이 사랑하는 어린이들의 영혼을 지켜주는 이야기를 동화로 쓰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오래도록 저희 곁에 계실 줄 알았던 스승님은 55세 나이에 하늘나라로 떠나셨습니다. 하얀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이었습니다. 정 선생님은 떠나셨지만, 그분께 동화를 배운 제자들은 항상 가르침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가장 잊을 수 없는 가르침은 마지막 수업 시간에 스승님이 해주신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그동안 ‘정채봉’이라는 배를 타고 강을 지나왔지요. 이젠 강을 건넜으니 부디 ‘나’라는 배를 잊어버리시오.”
그렇게 말씀하시던 스승님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생생합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동화’라는 바다로 가기 위해 무수한 강을 건너게 될 겁니다. 그러니 ‘정채봉’이라는 배가 고마웠다고 계속 머리에 이고 가는 건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니 나를 잊어버리고 여러분의 길을 가시오.”
자신을 잊으라고 하셨던 스승님을 저는 머리에 이고 가진 않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늘 간직하고 살아갑니다. 동화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신 우리 스승님. 그분을 만나게 해주신 우리 주님은 영원히 찬미 받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