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놀 외방 전교회는 1911년 6월 미국 땅에서 최초로 설립된 외방 전교회로 1920년대부터 평안도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러나 1941년 12월에 발발한 태평양 전쟁으로 미국이 일본의 적성국이 되면서, 조선에 있던 회원 전원이 본국으로 강제 추방됐다.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미외교부 위원장이었던 이승만은 미국 정부를 상대로 외교적인 차원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조선을 그리워했던 선교사들은 자연스럽게 이승만과 교류를 시작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도 이승만과 친분을 유지했던 캐롤 몬시뇰은 자신이 ‘망명 애국지사’ 이승만의 독립운동을 지원했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그런데 1952년 6월에 메리놀 외방 전교회가 부산에서 작성한 일기를 보면 이승만 정부에 대한 선교사들의 변화된 시각을 알 수 있다.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사람들은 매우 불안해하고 있다. 강압적인 정부가 그럴 듯한 혐의를 씌어서 국회의원들을 체포했다. 헌법에는 국회에 의한 (대통령) 선거를 6월 23일 전에 치르도록 되어 있는데, 물론 감옥에 있는 국회의원들은 새 대통령을 뽑는 투표를 할 수 없을 것이다.”
6·25전쟁 기간에 벌어진 ‘부산 정치파동’은 미국 정부에서도 용납하기 어려운 사건이었다. 이를 기록한 미 국무부 정보조사국 자료에는 1952년 5월 25일 부산 지역과 다른 지역에서도 계엄령이 선포됐고, 이승만 정권이 일부 국회의원들을 체포했으며 무리하게 헌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 언급돼 있다. 메리놀 외방 전교회 미국인 선교사들은 ‘부산 정치파동’을 주의 깊게 바라보면서 정부를 함부로 비판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상황을 히틀러 치하의 독일이나 스탈린 치하의 러시아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리스도교 현실주의’로 잘 알려진 신학자 라인홀드 니부어는 저서 「빛의 자녀들과 어둠의 자녀들」에서 민주주의가 경계해야 하는 위험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어떤 의미에서 민주주의 사회야말로 혼란의 위험들에 특별히 노출돼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만약 이런 위험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는다면 이 위험은 자유로운 사회를 삼키고 독재라는 악(惡)을 탄생시킬 수 있다.”
수많은 사람의 희생으로 세워진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기도하자. 불안정한 남북관계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협하지 않도록, 이분법적 반공주의를 넘어 한반도 전체의 민주주의를 위해 함께 노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강주석 베드로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