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을 충청도 전형적인 농촌에서 보냈습니다. 마을에 작은 개신교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작은 교회는 나를 설레게 하는 집이었습니다. 주일학교 선생님의 풍금 소리에 맞춰 찬송가를 부르고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 하얀 뭉게구름을 보며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늘 궁금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른이 되어 교회를 다니지 않았을 때 꿈에서 내 고향 저수지를 보았습니다. 저수지 수면위에서 예수님 얼굴을 보았는데, ‘다시 교회에 나오라’고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다닐 교회를 찾아다니다 우연히 성당에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우연히 갔다가 교리를 배우고 가톨릭신자가 되었습니다.
세례를 받고 성당에 다녔지만,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수녀님을 만났고 교리와 하느님에 대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하느님에 대해서 알게 될 때 성모님 꿈을 여러 번 꾸었습니다. 꿈을 꾸고 난 후 성모님은 그리움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 수녀님은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 카세트테이프를 주셨는데, 듣는 순간 마치 내가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설렘으로 가득 차 성모님을 그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얼굴은 성모님 얼굴’이라고 그때 느꼈고, 성모님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따스한 엄마, 사랑 가득한 엄마, 위로하시는 엄마, 안아주시는 엄마…. ‘우리의 엄마’로 성모님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성모님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태교를 하듯 내 생활도 변했습니다. 내 영혼에 나쁜 것이 들어올까 봐 조심하면서 성모님을 그렸습니다. 성모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알기에, 내 영혼이 세상의 모습일 때는 성모님을 그리기 힘들어 고통스럽기도 했습니다.
2002년 프랑스 루르드 성지에 계시는 한 수녀님께서 루르드 성지에 봉헌될 성모님 성화를 의뢰하셨습니다. 몇 달 동안 작업을 하는 동안, 너무 조심하면서 작업을 했기에 힘들어서 ‘이렇게 살면 힘들겠다’ 생각하고는 하느님께 기도하기 위해 매일 성당에 갔습니다. “하느님 제가 좋아해서 성화를 그린다면 저는 못 할 것 같아요. 근데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하겠습니다.” 매일 이런 똑같은 기도를 성당에 가서 했는데, 한 달 정도 지난 즈음 한 본당 신부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서울주보에 그린 성모승천 성모님을 보시고 ‘나의 성모님 성화가 성당에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하시며 성당에 오라고 하셨습니다. 순간 전율이 목뒤로 올라왔는데, 그 신부님은 몇 달 전 피정을 갔을 때 오신 신부님이셨고, ‘참으로 아름다운 성당’이라 생각했던 성당 주임 신부님이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기도에 답해주신 느낌이었습니다.
그 후로 성모님을 많이 그렸습니다. 특히 주교황청 대사님들께서 교황님께 봉정하실 성모님 성화를 의뢰하셨습니다. 최근 선종하신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과 프란치스코 교황님께 성모님 성화를 봉정할 수 있게 돼 교황청에서 두 분 교황님을 알현하는 영광도 주셨습니다. 성모님 덕분에 너무나 큰 영광과 기쁨, 모든 것의 신비로움을 맛보았습니다. 내가 붙잡고 있는 붓을 성모님이 잡아 주시기에 나는 붓을 놓을 수가 없고 끝까지 붓을 잡고 걸어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힘들면 성모님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매달릴 것입니다. 성모님 저를 위해 빌어주소서!
심순화 가타리나(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