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13일 시작된 마스크 착용 의무가 2023년 1월 29일부터 권고로 조정됐다. 의무가 해제됐어도 여전히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주일미사에 참례하는 노인 수가 감소했지만 성당의 빈자리는 늘 그들 몫이었다.
코로나19는 노인들의 삶을 완전히 뒤집어놓고 말았다. 이전에는 나이 들고 머리가 하얗게 세었어도 성당에 오가는 일이 건강을 지키는 방법이었고, 주름이 무성한 동년배들과 젊은 나이의 후배들을 만나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즐겁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코로나19 발생 후, 노인들은 감염에 대한 두려움과 여러 차례 봉쇄 기간을 거치면서 TV나 온라인으로 거행되는 예식을 시청하며 지냈다. 외출은커녕 비슷한 나이 또래를 만나지 못하고 TV에만 의존하며 고독과 버려짐을 느끼고 알 수 없는 심리적 질병과 단순 치매, 심한 우울증을 겪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나아가 가족 구성원의 부모 학대나 요양원 혹은 시설 내 일부 몰지각한 봉사자들의 노인 학대 인터넷 영상은 기존의 공공복지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마저 드러내 마음을 더욱 씁쓸하게 한다. “저를 내던지지 마소서, 다 늙어 버린 이때에. 저의 기운 다한 지금 저를 버리지 마소서”(시편 71,9).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본당에서는 사제·수도자·평신도(구역분과)로 구성된 두 그룹이 한 달에 2번, 사회복지분과에서 1번, 환우와 독거노인 방문을 지속해 오고 있다. “병자 방문을 주저하지 마라. 그런 행위로 말미암아 사랑을 받으리라.”(집회 7,35) 문턱을 넘어서면 물을 만난 물고기마냥 검은 눈동자에 생기가 돈다. 달콤한 사탕을 듬뿍 준비해서 손에 꼬옥 쥐여드리고 손을 마주잡고 마주보며 그분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귀담아들어 준다. 자주 들어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일지라도! 거기다가 노래까지 부르시면 흥을 돋아주는 것은 ‘당근’.
환우나 독거노인 한 분 한 분에게 친절한 말벗이 되고 기도를 정성껏 바치며 성체까지 모셔 드린 다음 사제관에 도착할 때면 어김없이 울리는 전화 벨소리. 80대 후반 세실리아 할머니의 목소리다. “씬부님~, 어떡한디야, 버얼∼써부터 눈알이 빠질라고 히오~잉!” 어떤 분들은 오래 산다는 것이 하느님의 은총이고 축복이라고도 말씀하신다. 부모와 노인 공경에 관한 말씀이 성경 여기저기에 드러나 있다. 모세는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탈출 20,12) “너희는 백발이 성성한 어른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을 존경해야 한다.”(레위 19,32) 특히 집회서는 나이 들어가며 오래 사는 것이 육체의 자연스러운 쇠함이나 피할 수 없는 세월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늙은 사람을 멸시하지 마라. 우리들도 늙어 간다.”(집회 8,6) “노인들의 이야기를 소홀히 하지 마라. 그들 또한 조상들에게 배웠고 이제는 네가 그들에게서 지각과 적절한 때에 대답하는 법을 배우리라.”(8,9) “노인들의 지혜와 존경받는 사람들의 지성과 의견은 얼마나 좋은가! 풍부한 경험은 노인들의 화관이고 그들의 자랑거리는 주님을 경외함이다.”(25,5-6)
감염으로 시름시름 앓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90세의 보나 할머니. “신부님이 곧 오신대요”라고 했더니 금방 일어나 생기를 되찾으셨다나. 방문하는 날엔 일찍 일어나 목욕하시고 1시간 전부터 현관문을 열어 놓고 기다리신단다. 약하고 힘없는 노인들에 대한 연민과 돌봄의 실천을 강조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을 되새겨본다. “노인들은 꺼려지거나 버림받은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충만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선하심을 드러내는 살아 있는 징표입니다. 행복하여라, 노인과 함께 사는 집! 행복하여라, 노인을 공경하는 가정!”(제2차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 담화, 2022년 7월 24일)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전주교구 문정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