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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전쟁과 지진, 그리고 사순 시기 / 고계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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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음 속에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건물들, 곳곳에 허연 먼지구름, 쩍쩍 갈라지는 도로, 애타게 가족 이름을 부르며 절규하는 이들, 혼비백산하여 내달리는 사람들…. 재난과 비극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겹으로 오는 것일까. 지난달 20일(현지시간) 튀르키예 동남부와 시리아 서북부 접경지에 규모 6.3의 여진이 또 몰아쳤다. 규모 7.8의 강진이 터진 지 2주 만이어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그동안 크고 작은 여진도 6000여 회에 달한다. 게다가 사망자는 5만 명을 넘겼는데 계속 늘어날 수 있어 아연실색하게 된다. 이들의 엄청난 시련이 그저 남의 얘기일까.

인류의 슬픔은 지진뿐만이 아니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바람 앞의 촛불’ 같았던 불안한 삶이 이제 어두운 터널을 지나나 싶었는데…. 작년 이맘때 발발해 지구촌에 큰 고통을 끼친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날 기미가 없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서방세계의 ‘올 오어 낫씽’(전부 아니면 전무) 양상이다. 세상에 폭력과 야만이 판치며 사생결단을 보자는 것일까. 애꿎게도 사람들만 생명을 잃고 집도 절도 없는 피난민들에게 트라우마를, 인류에게 비참함마저 안겨 주고 있다.

“저는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이들과 온 마음으로 함께합니다. 또한 목숨을 잃은 이들과 부상자들, 그들의 가족, 구조대원들을 위해 계속해서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의 구체적인 도움이 이 끔찍한 비극에서 그들을 지원할 수 있길 바랍니다.” 대재앙의 한복판에서 늘 프란치스코 교황의 호소가 세계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교황청 전교기구와 국제카리타스를 비롯해 유니세프, 국경없는의사회 등이 모금 운동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경건한 사순 시기를 보내고 있다. 40일을 뜻하는 ‘사순’은 재의 수요일부터 주님 만찬 성목요일까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부활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창세 3,19) 이 말씀을 기억하며 이마에 재를 받으니 심신이 차분해진다. 하느님을 만나는 정화의 시기에 신자들은 나름대로 희생과 극기를 한다. 금육과 단식에 이어 TV 시청 줄이기, SNS나 게임 덜 하기 등 자기 수련의 수덕(修德)을 한다.

“사순 시기에 신자들에게 권할 만한 수덕에는 무엇이 있을까?” 지난 석 달 사이 글로벌 핫 트렌드로 떠오른 챗GPT(오픈AI의 대화형 인공지능)에게 물어봤다. “1. 금식과 절제 2. 기도 3. 선행 4. 회개”를 제시하며 설명까지 덧붙여 준다. 그러면서 “우리 자신과 다른 이들의 영혼 구제 노력을 할 수 있다”라는 안내까지 잊지 않는다. 뜬금없지만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대화형 챗봇의 활용 가능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사순 시기에 술을 마시지 않겠다.’ 필자도 아주 오랜만에 큰 결심 하나를 했다. 알코올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수덕에 도전한 셈이다. “술을 수십 일 동안 끊는다고 무슨 대수이며 어떤 의미가 있는데?” 이런 반문을 가끔 받는다. 아마도 자신만을 위한 고신극기(苦身克己)에 그치면 곤란하다는 뜻이리라. 유혹을 뚫고 금주하면서 그 몫으로 미약하나마 이웃사랑을 실천하려 한다. 특별히 강진 피해로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부하려 한다. ‘위 아 더 월드(우리의 세상이에요)’가 아닌가. 많은 이들이 튀르키예와 시리아 지진 이재민들에게 십시일반 자선을 베풀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전쟁, 증오와 박해, 자연 재앙으로 고통 중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하느님의 크신 위로를 청한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마태 9,27; 마르 10,47)
고계연 베드로
전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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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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