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발발한 지 1년이 지났다. 작년 2월 24일 침공 소식을 듣자마자 필자는 한 가지 질문을 떠올렸다. 1950년 북한의 남침이 냉전 대립을 격화시켰듯이 러시아의 침공도 새로운 냉전적 질서의 본격화를 알리는 전환적 사건일까?
적나라하게 드러난 러시아의 위협 앞에서 유럽은 나토를 중심으로 단결했다. 특히 러시아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북유럽의 스웨덴과 핀란드는 군사적 중립을 버리고 나토 가입을 추진했다. 그동안 두 나라는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음으로써 안전을 확보하려 했지만, 이제 러시아의 위협은 구체적 억제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가까이 다가왔다.
하지만 아직 신냉전의 도래를 말하기는 어렵다. 상황은 복잡하고 유동적이다. 중국은 개전 이전에 러시아와의 무한협력을 약속했지만, 러시아의 전쟁을 대놓고 지원할 수도, 반대할 수도 없다. 작년 10월 유엔 특별총회에서 러시아 규탄 결의안이 143개국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되었지만, 중국,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35개국은 기권표를 던졌다. 서방의 대러 경제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뿐 아니라 인도도 러시아산 원유를 계속 수입한다. EU조차 러시아산 가스 도입을 전면 중단하지는 않았다. 많은 저개발국에서는 러시아의 침공에 따른 지정학적 격변보다 국가부채, 기후재앙, 코로나 팬데믹 등이 훨씬 시급하고 절박한 문제이다.
우크라이나의 운명은 세계질서의 풍향계가 되었다. 러시아의 승리는 중국과의 연대와 권위주의 물결을 강화할 것이고, 중국은 대만침공을 좀 더 진지하게 고려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우크라이나의 승리는 자유주의 질서의 건재를 재확인할 것이다. 물론 어정쩡한 종전이나 휴전의 가능성도 있다.
아직도 전쟁의 향배는 예측을 불허한다. 개전 초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운 러시아의 손쉬운 승리를 예상했지만, 우크라이나의 결사 항전은 전황을 바꿨다. 그러나 러시아도 전쟁 태세를 본격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소모전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서방의 무기 지원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개전 직후 러시아의 침공을 비판했고, 유엔 결의안에도 찬성했다. 대러시아 경제제재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도 동참해왔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강 건너 불’에 가깝다. 주한러시아대사관 앞에서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지만, 여론의 관심은 낮다. 작년 4월 국회도서관에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화상연설이 열렸지만, 정치권의 관심과 참석은 저조했다.
최근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이 주요 외교 사안으로 대두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직접적 무기 지원에 선을 그어왔다. 하지만 1월 말 방한한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이 특별강연에서 촉구했듯이, 적극적 무기 지원을 바라는 국제적 요구가 강해지고 있다. 미국 등의 무기 제공 능력에 일부 한계가 드러나는 가운데 세계 방위산업계의 총아로 등장한 한국에 거는 서방의 기대는 크다. 반면에 대러 관계가 악화하고, 우리의 대비 태세에도 부정적 영향이 미칠 수 있으니 신중할 필요도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우리 여론의 관심 수준도 정책 결정의 주요 변수이다.
무기 지원 같은 문제에 쉬운 답은 없다. 그러나 답이 무엇이냐에 못지않게 답을 찾는 과정도 중요하다. 세계질서의 향배가 걸린 사안인 만큼 활발한 토론이 필요하다. 정부 안에서 나름의 논의가 있겠지만, 사회적 논의는 크게 부족하다. 어떤 정책이든 일장일단이 있지만, 사회적 합의 형성에 노력해야 정책의 지지기반이 넓어지고 일관성도 강화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