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들이 마흔 되면 소 농사를 지으러 내려오겠다고 약속했어요. 지금 서른아홉인데, 이 상황에 오라고 할 수 있겠어요?”
한평생 소 농사를 지어온 이상식씨는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소를 사고파는 ‘소값’이 바닥을 치면서 내년이면 가업을 잇기로 한 아들과의 약속도 불투명해졌다. 현재 소값은 손익분기점에도 한참 못 미친다. 전국한우협회에 따르면 소를 키울수록 오히려 123만 원씩의 적자가 나고 있다. 이씨가 소를 키워 온 50여 년의 세월 가운데 이처럼 힘든 시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설상가상 생산비는 천정부지로 솟았다. 조사료, 배합사료 할 것 없이 소들의 먹거리 가격이 올랐다. 축사에 깔아주는 수피 값도 톤당 4만 원이 뛰었다. 도농이 함께 기르는 가톨릭농민회의 ‘가농소’는 지육 kg당 일정 금액을 보장해주면서 선순환적 모델을 보여주고 있지만 현 상황을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다. 농민들은 당면한 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 단위의 수매 등 대책을 호소하고 있다. 소비자 밥상물가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체감되지 않는 현실에 농민들은 답답할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소값 폭락이 보여준 농촌 지속가능성의 위기다. 대내외적인 상황으로 생산비는 앞으로도 오를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안정 대책이 속속 나오고 있지만, 농민들은 근본적인 대책 없이 농촌은 유지될 수 없다고 우려한다. 당장 농민 스스로도 자식들에게 가업을 물려주기 미안해할 정도다. 이렇게 농촌 인구가 줄고 있는 틈을 대규모 외국 자본들은 호시탐탐 노려보고 있다.
이씨는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농업을 이끄는 핵심 연령대는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 이들이 은퇴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10년 남짓이다. 농민들이 절망 속에 논을 갈아엎고 손해 보며 소를 키우는 사이, 지금도 시간은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