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당시 수원교구 교구장님께서 수원가톨릭대학교에 기증하시려고 정하상 바오로 성인이 신학생이었던 김대건 안드레아와 최양업 토마스, 최방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를 데리고 중국 변문으로 가시는 그림을 제게 의뢰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우리나라 교회사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그려본 적도 없었기에, 어떻게 그려야 할지 고민스러웠습니다.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 누군가 배론성지에 함께 가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리고 배론성지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 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최양업 신부님 묘를 찾아간 저는 묘에 손을 얹고 도와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토마스 신부님 저는 지금 정하상 바오로 성인과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세 분의 어린 신학생 모습을 그려야 하는데 저 좀 도와주세요.”
이후 어느 신부님께서 한무숙 작가의 「만남」과 윤의병 신부님의 「은화」를 읽어보라고 하셨습니다. 당장 서점에 가서 책을 구입해서 읽어가는데, 박해시대 교우들의 처절한 모습을 바라보게 됐습니다.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지면서 ‘언젠가 당신들을 꼭 그리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박해시대 모습을 조금씩 알게 되었고, 순교자들의 삶을 마주하며 무엇을 그려야 할지 제게 다가오는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그 덕분에 의뢰하신 그림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수원가톨릭대학교에 그림을 설치하고 축복식을 마치게 됐습니다. 축복식이 끝난 뒤 주교님께서 샤를르 달레 신부님의 「한국천주교회사」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나라 교회사 그림도 그리라”는 말씀도 제게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내 마음속에 숙제처럼 남았고, 당고개순교성지 작업은 ‘꼭 해야 할 숙제’로 여겨졌던 순교자들과 만나는 자리였습니다.
2004년 정하상 성인과 세 신학생을 그린 그림이 순교자들과 이어져 마치 누군가가 쓴 글처럼 ‘인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저는 지금까지 계속 순교자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특히 당고개순교성지의 복녀 이성례 마리아 가족 모습과 마재성지 복자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가족이 박해로 풍비박산되는 고통을 겪고 천국에서 위로와 영광 받으시는 모습을 그릴 때는 신앙적인 힘을 받기도 했습니다.
순교 성인의 모습을 그리려면 그분들 삶을 바라봐야 하는데, 하느님은 그때마다 부족한 나에게 신앙을 보여 주시고 당신 존재를 알려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또 순교 성인들을 우리에게 보내주시어 그분들 은총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고, 그분들 손을 잡고 가라고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박해 시대의 어둠과 두려움 속에서도 순교 성인들은 하느님 빛을 따라가면서 목숨을 내놓았습니다. 하늘에서 영광의 팔마가지를 들고 기쁨으로 하느님 곁에 계시는 순교 성인들은 우리도 힘들고 고통스런 삶의 십자가를 메고 끝까지 걸어가서 하늘에서 자신들과 함께 하느님 품 안에서 찬미 노래 부르기를 원하실 것 같았습니다.
지금도 커다랗고 하얀 캔버스를 바라볼 때마다 캔버스 위에서 기쁨으로 가득 찬 순교 성인들의 모습을 상상합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순교자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심순화 가타리나(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