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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그리스도는 몸이 없다 (김정환, 아우구스티노, 중년의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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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중 누군가 아팠던 경험, 아마 다 있으실 겁니다. 가슴에 돌덩이가 들어앉은 것 같지요. 생사를 넘나드는 중병이라면 돌덩이 정도가 아니라 큼직한 바위가 짓누릅니다. 저와 형제들도 그런 시간을 겪었어요. 부모님 모두 암으로 투병생활을 하셨거든요. 그러다 2012년에 어머니가 먼저, 그리고 2014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떠나시고 얼마 후 이번에는 미국에 있는 누나로부터 나쁜 소식이 들려왔어요. 난소암이라는 겁니다. 그나마 아주 늦게 발견된 건 아니어서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받으며 몇 년간 예후를 지켜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작년 봄을 지나면서 더 이상 손쓰지 못할 만큼 상태가 악화되었습니다. ‘바위의 시간’이 또 찾아온 거지요.

멀리 있는 제가 매달릴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우리 누나 낫게 해주세요’라는 기도는 나오질 않았습니다. 부모님 간병 때의 경험 때문이지요. 실낱같은 기대를 걸었다가 또 실망하고,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병을 견딜 용기를 누나에게 주세요’라고 슬쩍 기도를 틀었습니다. 일단 마음이 강건해야 몸도 버틸 수 있는 법이니까요.

그러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1515~1582)의 말씀을 접했습니다. ‘그리스도는 몸이 없다(Christ has no body)’는 거예요. 그리스도는 눈이 없기에 우리의 눈으로 세상을 보시고, 다리가 없기에 우리의 다리로 세상을 돌아다니시며, 손이 없기에 우리의 손으로 뭔가를 만드신다는 거지요. 그러니 이 세상에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뜻을 실행하는, 그리스도의 손과 발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었어요.

부끄러웠습니다. 원래 환자는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외로움이 크지요. 먼 타국에서라면 더 그럴 거예요. 그런데 저는 누나와 연락을 자주 하는 편이 아니었습니다. 두려웠거든요. 누나의 아픈 목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너무 힘들어질 것 같았어요. 그러니 ‘예수님, 부디 누나에게 용기를 주세요’ 하고 기도만 해놓고 정작 저는 아무것도 하질 않은 겁니다. 아픈 누나를 예수님께 떠맡기고 만 셈이에요. 이 땅에는 몸이 없으신 분께 말이지요.

그래서 기도를 다시 바꿨어요. ‘누나의 마음에 용기를 주십시오’가 아니라, ‘제가 누나의 마음에 용기를 줄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요. 기도를 마치면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물론 벨이 울릴 때마다 마음은 무거웠고, 며칠 간격으로 기운을 잃어가는 목소리에 가슴은 미어졌어요. 그래도 “누나 사랑해”라고 전화를 끊을 때 “으응” 하는 답에는 전화를 받을 때보단 조금 힘이 들어 있는 것 같았어요. 그리스도의 용기가, 그리스도의 사랑이 저의 손과 목소리를 통해 누나에게 전해졌던 것일까요.

누나는 작년 10월 14일에 떠났습니다. 데레사 성녀의 말씀을 좀더 일찍 알았더라면 더 자주 그리스도의 통로가 되어 주었을 텐데요. 그저 하늘나라에서는 아프지 않을 거라고, 고단했던 누나의 영혼을 주님께서 꼭 안아 주실 거라고 믿어봅니다. 저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무딘 손발로나마 조금 더 쓰이다 가겠습니다. 그때까지 잘 지내 누나. 또 만나.


김정환 아우구스티노(중년의 대학생, 연세대학교 심리학·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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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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