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한국어판 완역본 「돈키호테」를 읽게 됐다. 소설 속 돈키호테의 모습은 어릴 때 본 만화와는 사뭇 달랐다. 그는 단순한 미치광이가 아니었다. 소설 속 인물들조차 돈키호테를 두고 ‘기사도 외의 다른 분야에선 정신이 매우 명료한 자’로 묘사한다. 과연 그를 단순한 미치광이로 치부할 수 있을까?
문학계에서는 돈키호테의 ‘이상주의’ 메시지에 주목한다. ‘고귀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자기희생을 대가로 치르는 이상주의자의 모습을 돈키호테에게서 찾은 것이다. 실제로 소설 속 돈키호테는 시골 귀족 ‘이달고’ 출신이다. 엄청난 부자는 아니었지만, 여생을 편히 보낼 정도의 재산은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자신의 이상을 위해 불확실한 모험을 자처한다.
얼마 전, 세계는 돈키호테처럼 불확실한 모험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국제해양조약이 지난 4일 체결된 것이다. 2030년까지 전 세계 공해(公海)의 30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한다는 게 핵심이다. 공해는 전 지구 바다의 60가 넘는 면적을 차지하지만, 특정 국가의 주권ㆍ경제권이 인정되지 않는 탓에 보호의 주체를 찾기도, 특별한 보호조치를 취하기도 어려웠다.
보호조약 체결은 사실 꿈같은 이야기로 받아들여졌다. 공해 보호를 위해 국제사회가 15년 넘게 협상해왔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 회의도 자원 개발 공유 등의 안건을 두고 각 나라의 입장이 엇갈리면서 난항이 이어졌다. 상황은 마지막 날 반전됐다. 각국이 기후위기 대응과 생물 다양성 보호라는 ‘이상’에 뜻을 모은 것이다.
물론 조약 체결이 끝은 아니다. 각국 정부의 서명과 비준을 받는 과정이 남아있다. 이는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 이제 공이 각국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상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돈키호테의 결심이 다시 필요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