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부활의 기쁨을 맛보고 있다. 주님께서 당신의 죽음을 통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새 생명의 길을 열어주셨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며 자신의 수난을 받아들이셨다. 언제부터 예견해 준비하신 것인지 헤아릴 수조차 없다.
우리는 언제부터 부활을 준비하고 있을까? 일반적으로 사순 시기부터라고 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유난히 시렸던 지난해 겨울이 떠오른다.
생명의 신비상 수상 기관 취재차 의정부교구 발달장애인 장애인거주시설 ‘조이빌리지’를 찾았다. 장애인들의 보금자리를 둘러보던 중 문득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발달장애인 병희씨가 취재진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불청객의 방문이 달갑지 않아서일까.’ 노파심이 들 때쯤 그는 두 팔을 벌리더니 취재진을 안았다. 예상치 못한 환대에 어쩔 줄 몰랐던 기억이다.
병희씨의 온기는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그 뒤에 밀려온 것은 부끄러움이리라.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은 알게 모르게 얼마나 많은 차별을 감행하고 있던가. 그러나 이곳의 병희씨를 비롯한 모든 발달장애인은 먼저 다가와 손을 잡고 미소를 지어주었다.
이것이 발달장애인 기획 취재를 준비하는 계기가 됐다. 느린 호흡이었지만, 진솔하게 그들과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 기사 보도 후 얼마 뒤 한 발달장애인 부모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사순 시기에 잘 맞는 기사였어요.” 365일을 사순 시기로 보내야 하는 발달장애인과 그의 가족들에게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모두에게 진정한 부활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늘 나만의 부활을 기다렸다. 그러나 이제 조금은 다른 부활을 기대해본다.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부활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