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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증인처럼 / 박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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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시기를 지나 우리는 주님 부활 대축일을 기쁘게 맞이했고 이제 주님 승천 대축일로 향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사순 시기 동안 신심단체와 함께 매주 금요일 저녁 십자가의 길에 참여했던 것과 더불어 성삼일과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를 놓치지 않고 참례할 수 있어 그동안의 부끄러움을 조금은 덜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루는 성경을 읽다가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흘 만에 일으키시어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백성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미리 증인으로 선택하신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사도 10,40-41)라는 구절이 눈에 깊이 박혔습니다. 예수님은 왜 모든 백성이 아니라 미리 선택하신 ‘증인’에게 나타나셨을까? ‘증인’이란 어떤 사람일까?

비록 중요한 순간에 예수님을 부인하고 뿔뿔이 흩어지기는 했었지만 동고동락했던 제자들이 부활의 증인이 됐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토마스 등 말이죠. 분명 제자들은 기적을 보았음에도 인정하지 않던 수많은 유다인들과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리사이나 사두가이뿐만 아니라 심지어 고향 사람들조차도 예수님을 믿지 않던 자들이 부지기수였으니 말입니다.

법률용어사전을 보니 ‘증인’이란 ‘법원 또는 법관에 대하여 자기가 과거에 체험한 사실을 진술하는 제3자’라 돼 있고 ‘증인은 자기가 과거에 실제로 경험한 사실을 진술’하기에 다른 이들과 구분된다고 돼 있네요. 결국 ‘증인’은 체험하고 느낀 자이며 제3자에게 있는 그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저 스스로에게 반문해 보게 됩니다. 남북의 협력공간인 개성공단이라는 곳에서 화해와 평화의 체험을 했던 저는 ‘증인’일까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증인’이라면 저에게는 이 체험을 ‘증거’해야 할 의무가 있을 것입니다. 모든 백성에게 그 의미가 전달될 수 없기에 앞서 체험한 ‘증인’들의 노력은 당연한 것입니다. 마치 하느님 백성인 교회가 세상에 하느님 나라의 구원과 은총을 선포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처럼 말이죠.

강대국들의 거친 이해충돌 과정에서 남북 간에도 거친 말과 행동이 오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목소리도 점차 경직되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이 경직된 분위기를 진정시키려는 노력이 세상물정 모르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자문해 봅니다. “네가 ‘증인’이라면 ‘증인’처럼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입니다.
박천조 그레고리오(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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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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