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종교구 최고참 사제인 현광섭 신부(육군 대령)가 오는 9월 30일 전역한다. 법적으로 보장된 휴가일 등을 빼면 실제 군 생활은 사실상 7월 초에 끝난다.
1993년 8월 사제품을 받아 올해로 수품 30년째. 1997년 군종 사제로 임관됐으니, 사제생활 대부분을 온전히 군에서 지냈다. 햇수로 27년에 이른다. 역대 군종 사제 중 현 신부보다 오래 군 생활을 한 사제는 1981~2009년 28년간 복무한 청주교구 고 유병조(2015년 선종) 신부뿐이다. 현재 마지막 임지로 지상작전사령부를 관장하는 선봉대본당 주임으로 사목 중인 현 신부는 그간 태극ㆍ자운대ㆍ무열대본당, 육군본부 등지에서 두루 사목한 군종교구의 산증인이다. 2004년엔 이라크 자이툰부대 1진으로 파병돼 전황 속에 8개월을 지냈다. 6월 21일 현 신부와 이야기를 나눴다.
감사의 기도가 절로
전역을 앞둔 27년 차 군종 사제의 첫 마디는 ‘감사’였다. “이 순간까지 살아온 원동력이나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생각하게 되는데, 하느님의 보호하심과 수많은 신자의 보호, 그리고 기도 덕분”이라며 “내가 잘 난 것은 하나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축하받을 입장이 아니라, 감사할 입장, 그저 면면히 감사할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는 “어떻게 하면 최선을 다하는 군종신부가 될 수 있을지 고민했던 초임 때”라고 했다. 그는 “초임 때 정말 열심과 정성이 뻗쳤다”며 “나이트클럽 직원처럼 라이터 판촉물을 제작해 돌리기도 하고, 화장실이나 생활관에 명함을 만들어 부착하고, 군용 담배에 명함을 꽂아 돌리고, 장병들 좋아하는 캐러멜을 명함과 함께 돌리는 등 ‘별짓’을 다 해봤다”고 말했다. 모두 주님을 알리는 그만의 땀나는 노력이었다.
이라크 파병, 목숨 위협 느끼기도
이라크 파병 때는 저항 세력의 공격으로 심각한 목숨의 위협을 느끼기도 했다. “2004년 9월 3일 이라크로의 첫발을 디딘 후 첫 임무는 1진 1제대 1단위 16호 차량 선탑자로 이동하는 것이었다”며 “저항 세력의 공격이 이어지는 속에 나흘간 1200㎞를 이동할 때 머리카락이 쭈뼛 서면서 철모를 뚫고 나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 ‘신부님, 기도해 주세요’라는 운전병의 외마디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며 “그 운전병은 신자도 아니었고, 그냥 나와 함께 나흘 동안 안전하게 이라크 주둔지에 도착해야 하는 관계였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라크에 있는 동안 나라가 있고 평온하게 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됐다”며 “중동에서 (이라크) 주교님과 사제와 수도자, 신자들을 만난 것 또한 경이로운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병사들에 대한 휴대폰 사용 허용, 일과 후 자율시간 확대 등 변화된 군내 환경이 사목에 저해요인이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답했다. 현 신부는 “타종교의 경우, 다양한 예배 방식, 문화가 있고 콘텐츠가 있는 찬양방식 등으로 늘 새로움을 모색한다”며 “그런데 가톨릭은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똑같고 하나인 교회라고 강조하지만, 이는 자기 색깔을 내며 사는 요즘 젊은이들과는 너무 먼 분석”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군 사목을 넘어 현대의 사목 현장은 변화를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현실이 되었다”고 말했다.
후배 사제들에게
최고참 군종 사제는 후배 군종 사제에게 소명 의식을 강조했다. “군종 사제는 일반 사제로서의 정체의식만 가지고는 활동할 수 없다”며 “국방이 무엇이고, 군대가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군인이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면 사목 대상인 군인들과 괴리감만 늘려가는 사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 의미에서 선교 사목에 대한 뚜렷한 정체의식과 소명감이 필요하며, 그래서 군복도 입는 것이고 머리도 짧게 깎아보는 것이고, 훈련 때 얼굴에 먹칠하고 함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신임 군종 사제들에게 귀에 쏙 들어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자신의 교구에서 멀리 떨어져 주변에 동료 신부가 많지 않은 현실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자신의 영적 성장과 지적 성장에 도움이 되도록 잘 활용하기 바란다”면서 “제발 밥 굶지 말고, 맨날 배달 음식 시켜 먹지 말고 요리를 배워서라도 밥 잘 챙겨 먹기를 신신당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두 가지만 잘해도 아주 훌륭한 군종 사제가 될 것”이라고 덕담을 건넸다.
현 신부는 친정인 춘천교구로 돌아간다. “이제까지는 군종 사목이라는 성소를 갖고 살았다면, 이제는 춘천교구 성소를 갖고 살아야 한다”며 “4년 차 춘천교구 신부로, 막 보좌 신부를 마친 마음으로 임하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현 신부는 “언젠가 신학교에서 강의하고 싶다”며 “거의 본당 사목 영성만을 가르치는 신학교에서 사제가 되고자 하는 신학생들에게 세상은 넓고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