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라면 대본을 외우면서, 연주자라면 악보를 익히면서 연습할 것이다. 그런데 작곡가는 평소에 무엇을 할까?
“하루 종일 곡을 쓰죠. 머릿속에서 정리하는 단계가 가장 중요한데, 그 생각하는 과정이 길거든요. 그때 누워 있기도 하고, 걷거나 계속 멍하게 있으니까 다른 사람이 볼 때는 게으름 피운다고 생각할 거예요. 계속 곡을 쓰는데 많이 버려요. 실제로 사용하는 건 5도 안 되니까요.”
7년 전부터 생각한 곡
어쩌다 영감이 떠오르면 순식간에 곡을 쓰는 건 영화에나 나오는 이야기인가 보다. 적어도 작곡가 류재준(그레고리오)씨의 경우는 아니란다. 서울 방배동 자택에서 그를 만났다. 국립합창단 여름합창축제로 8월 3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초연되는 ‘Missa Solemnis(장엄 미사)’도 7년 전부터 생각했던 곡이다.
“당시 팔레스타인 문제도 있었고, 아프리카에서는 식량 부족으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지금도 분쟁이나 전쟁 중인 지역이 한두 곳이 아니잖아요.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회의감이 들기도 해요. 인간의 자유의지는 어디까지인가. 코로나19 팬데믹 때는 우리도 겪는 일이라서 신경을 썼지만, 타인의 힘들고 어려운 일에는 쉽게 눈을 돌리지 않죠. 그래서 얘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빚어진 ‘Missa Solemnis’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정체된 사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끝나지 않은 전쟁, 지구 온난화 등 우리 사회의 대립과 갈등, 심각한 환경 문제 등 방대한 현안을 담고 있다. 동시에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을 위한 헌정곡’이다.
“작곡이 선동이나 계몽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기록’할 수 있고, ‘선물’할 수 있죠. 이 모든 사태에서 항상 조바심을 내고 힘든 사람은 누군가의 어머니잖아요. 가톨릭에서 특별히 여기는 게 피에타죠. ‘미사 솔렘니스’는 전례 때 쓰는 미사곡을 공연장에서 연주할 수 있도록 만든 곡인데, 모든 어머니를 조금이라도 위로하고 싶었어요.”
신앙은 생활에 녹아 있어야
그러고 보니 그의 세례명이 그레고리오다. “그냥 8월에 태어나서, 집안 대대로 가톨릭이거든요. 그런데 펜데레츠키 선생님을 찾아 유학 간 곳이 가톨릭 국가인 폴란드였고, 선생님의 가장 친한 친구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었죠. 제가 가톨릭 신자라고 하면 놀라는 사람도 많아요. 신앙은 특별한 게 아니라 그냥 생활에 녹아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방향성을 정해주는 거죠.”
서울대 음대 작곡과, 폴란드 크라쿠프 음악원을 졸업한 그의 음악은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다. 재작년에는 우리나라 부동산 현실을 풍자한 ‘아파트 찬가’를 선보였는가 하면 그가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서울국제음악제의 올해 주제는 ‘낭만에 관하여’다.
“아파트값이 너무 비싸서 쓴 곡이에요.(웃음) 음악은 연주자와 관객이 즐길 수 있어야 해요. 그 포인트가 상실되면 자기만족일 뿐이죠. 클래식 음악 시장은 여전히 좁아요. 10월에 열리는 서울국제음악제는 누구라도 편하게 와서 클래식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한 축제인데, 올해는 힘든 시기를 지나온 사람들과 긍정적인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올해로 15회를 이어오기까지 그는 부정적인 현실과 자주 맞닥뜨려야 했다. 관객들에게 수준 높은 공연을 저렴한 가격에 선보이려면 정부와 기업 등의 후원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항상 그 부분이 녹록지 않다.
문화 복지를 위해
“좋은 연주로 관객들이 즐거움을 얻는 건 기본이고, 그 음악과 환경에 익숙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해요. 그게 페스티벌의 역할이고, 문화 복지거든요. 클래식도 가톨릭처럼 생활의 일부가 되는 거죠. 지난 10여 년간 연주자들의 수준은 굉장히 높아졌는데, 시장의 상황은 악화됐어요. 올해는 정말 경제가 안 좋은지, 지금도 스폰서를 찾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곡 작업으로 얻은 수입은 고스란히 또 다른 무대를 위해 사용된다. 굳이 이 고행을 지속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지금은 제가 할 수밖에 없고, 아직 열심히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결과적으로 사람을 위한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런 차원에서 한시도 쉬지 않고 음악을 하고 있고, 정말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거든요.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나중에 작곡가로 은퇴할 때 ‘거지’만 안 되면 좋겠어요.(웃음)”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