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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출신의 한 목자가 48년간 외친 평화의 노래

이기헌 주교, 사제 생활 회고록 「평화를 주소서」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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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생애와 신앙 여정을 담은 책 「평화를 주소서」를 발간한 이기헌 주교가 북한이탈주민과의 만남을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밝히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그럼에도 희망을 놓아선 안 됩니다. 기도가 필요한 순간입니다.”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가 사제로 24년, 주교로 24년의 생활을 돌아보며 엮은 「평화를 주소서」를 펴냈다. 일종의 회고록이지만, 분단의 역사 속 한평생 평화를 외치고 성찰한 기록물에 더 가깝다.

 


이 주교는 6·25 전쟁 전인 1947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평양교구에서 사목하다 순교한 하느님의 종 이재호(알렉시오) 신부가 이 주교의 작은 아버지다. 이렇듯 북녘의 순교자 집안에서 태어난 배경 탓에 이 주교는 통일을 간절히 염원하며 자연스레 평양교구 신학생으로 입학했다. 일생을 헌신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여정의 시작이었다.

사제가 된 이후 이 주교가 한반도 평화의 중요성을 깨달은 결정적 계기는 1989년 중국으로 떠난 성지순례에서다. 이 주교는 “우리 민족이 일제의 탄압과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큰 집단을 이룬 연변, 도문, 용정에서 그들의 삶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며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아프고 외롭게 살아야 했던 동포들 모습에 가슴이 아렸다”고 회상했다. 또 5년간 일본 교포사목을 하면서 차별받고 어려움에 처한 재일교포들과 함께하고, 사할린에서 징용으로 끌려온 동포들을 만나며 더 깊은 차원의 평화를 성찰했다.

이후 이 주교는 2010년 최북단 교구인 의정부교구 교구장에 착좌하고, 2012년에는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장에 선임되면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교회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책에는 일련의 과정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주교는 “50년 가까이 사목 활동을 하면서 늘 마음 한구석에 분단이라는 현실이 아프게 남아 있었는데, 책 출간을 위해 전체적인 생활을 정리하면서 어떤 면에서는 홀가분한 기분도 들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그리 긍정적이지만 않았다. 이 주교는 “국내 정치의 이념 논쟁과 주변 강대국들의 영향으로 한반도 평화가 항구하게 진행된 적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인간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결국 평화를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평화를 주소서’를 책 제목으로 정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이 주교는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은 막막한 한반도 현실에 무관심으로 돌아서고 체념하는 것”이라며 “그럼에도 우리 신앙인은 희망하고 기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주교는 “예수님의 탄생부터 수난, 죽음, 부활은 모두 평화로 이어진다”면서 “평화는 결국 성경으로 귀결된다”며 성경 안에서 평화를 성찰할 것을 권유했다. 이어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깊이 성찰해보면, 평화란 적대감을 없애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리스도야말로 진정한 평화이십니다.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 우리 안에 적대감을 없애고 연대해야 합니다.”

주교들은 만 75세가 되면 교황에게 사임서를 내고 은퇴를 기다린다. 이 주교도 올해를 마지막으로 은퇴 후의 삶을 준비하고 있다. 이 주교는 “사목을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북한이탈주민들을 만났을 때”라며 은퇴 후 중요한 계획 중 하나도 북한이탈주민들과 만남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 주교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요한 1서의 말씀처럼, 사랑이 필요한 그들을 사랑할 때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하기 힘든 기쁨과 행복이 샘솟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가장 중요한 계획은 ‘기도’라고 밝혔다.

“인간적으로는 75년이라는 세월을 큰 병 없이 지내게 해 준 것에, 사목자로서는 무탈하게 지나온 데에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기도를 통해 채워나가야겠지요. 그리고 지금껏 그래 왔듯 제 삶의 첫 자리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기도가 될 것입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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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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