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사직·근무지 이탈사태
서울성모병원 1층 로비 전경. 의사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충돌로 내원객이 줄고 수술 등 일부 진료에 차질을 빚고 있다.
정부의 의사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의 사직서 제출로 가톨릭이 운영하는 병원들도 진료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월 27일 현재 서울성모병원 등 전체 전공의 대부분이 근무하는 주요 99개 수련병원에서 9909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들 중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는 8939명이 넘었다. 우리나라 전체 전공의 규모는 1만 3000명으로, 사직서를 낸 전공의는 10명 중 8명꼴이다.
정부와 의사단체 간 대치가 이어지면서 주요 병원들이 전체 수술의 30 이상을 줄이는 등 ‘의료대란’ 피해가 커지고 있다. 서울성모병원의 경우, 소속 전공의 310명 중 70 이상이 사직서를 내고 근무지를 이탈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환자들로 북적이던 주요 병원들의 내원객이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전공의가 빠진 빈자리를 전임의와 교수 등이 맡으면서 중요한 수술에 심각한 차질은 빚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성모병원 관계자는 “수술, 야간 당직 등에 교수를 배치하고 있어 현재로선 병원 운영에 큰 지장은 없다”면서도 “그러나 전공의 이탈 규모가 더 커지고, 상황이 길어지면 비상 체제를 장기간 끌고 가긴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은평성모병원도 “우리 병원은 상대적으로 배정받은 전공의 수가 적어 아직까지 큰 어려움은 없다”며 “다만 시간이 갈수록 일부 과는 피로도가 높아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전했다. 의정부성모병원 관계자는 “전공의 70여 명 가운데 50여 명이 자리를 비운 상태”라며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일부 과에서는 입원이나 수술 일정을 잡는 데 무리가 생길 것”이라고 했다. 부천성모병원도 “수술 등에 차질이 없도록 전 교직원이 합심해 운영하고 있다”며 사태가 빨리 해결되길 희망했다.
이번 갈등은 정부가 2025학년도부터 의과대학 정원을 2000명 증원하기로 하면서 시작됐다. 정부는 현재 의료 취약지구에서 활동하는 의사 인력을 전국 평균 수준으로 확보하고 급속한 고령화에 대비해 2035년까지 1만 명의 의사 인력이 필요한 입장이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의대 정원은 현재 3058명에서 5058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반면, 의료계는 정부 분석이 옳지 않다는 주장이다. 가톨릭대학교 가톨릭중앙의료원 인턴 대표를 지내다 사표를 낸 대전성모병원 류옥하다씨는 “필수 의료 인력 부족 같은 현재 의료계 문제가 정말 의사 수가 부족해서 생긴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의사 인력 증원에 반대했다. 김세현(정형외과 전문의) 박사는 “갑자기 늘어난 학생을 수용할 의대 교육 인프라와 자재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이런 과정을 통해 양산될 저질 의사로 인한 폐해는 전적으로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의학 교육의 실제와 현장 상황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정책 입안자들의 졸속 행정이 낳을 미래의 의료 후환이 두려울 뿐”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인구가 늘고 사회구조가 바뀌면서 변호사 등 다른 전문 영역은 증원이 이뤄졌는데, 의사는 전혀 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변호사의 경우 1985년 300명이던 사법시험 합격자 수가 로스쿨이 도입되면서 입학 정원이 2000명으로 늘었다. 변호사 시험 합격자 수 1500~1600명을 기준으로 해도 1년 배출 인원이 과거 40년 전에 비해 최소 5배 이상 늘었다. 그러나 의대 정원은 2000년 당시 3507명이었지만, 의약분업을 하는 과정에서 3058명으로 449명 줄었다.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에도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들에 대해 ‘의사면허 정지’, 또 집단행동 주동자에 대한 ‘구속 수사’ 입장을 밝힌 상태다. 이에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무리하게 포퓰리즘 정책을 강행해 평온하던 의료 시스템을 재난 상황으로 몰아간 것은 정부”라고 비난했다.
이상도 선임기자 raelly1@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