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우리나라 어느 정권도 1923년 간토(관동)대학살 희생자를 공식적으로 추모한 적이 없습니다. 일본 도쿄를 여행하는 한국인 가운데 불과 100년 전 이곳에서 수많은 조상이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망각의 역사가 기억의 역사가 되도록, 희생당한 분들을 잊지 않고 오늘 우리 삶의 자리에서 재현할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장영식(라파엘, 65, 부산교구 전포본당)씨가 넋전 6661장을 찍은 흑백 사진 앞에 서서 말했다. 넋전은 무속에서 망자의 혼이 서리도록 염원하며 사람 형상을 본떠 종이를 오려 만든 것을 말한다. 6661명은 1923년 9월 1일 일본 간토 지방에서 진도 7.9 대지진이 일어나고 닷새 동안 현지 군경과 자경단에게 학살당한 조선인 숫자다.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이 그해 12월 발표했다. 훼손 상태가 심해 신원 확인이 불가능한 탓에 아직도 희생자 수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간토대학살로부터 100년이 흐른 지난해 9월 3일, 학살 현장 중 한 곳인 도쿄 아라카와 강변을 찾은 한국과 일본 시민들이 대한해협을 건너온 넋전 6661장을 나무에 매달았다. 씨알재단(이사장 김원호) 주도로 진행한 조선인 희생자 추도 위령제의 일환이었다. 2월 21일~3월 5일 서울 종로구 갤러리인덱스(문의 : 02-722-6635)에서 열린 ‘넋은 예 있으니’ 사진전은 장 작가가 그 현장을 생생히 담은 기록이다.
아라카와강은 조선인들의 피와 땀이 서린 비극의 공간이다. 다름 아닌 조선인 노동자들이 동원돼 건설한 인공 강이기 때문이다. 일본 시민단체 ‘봉선화’는 매년 9월 2일 이곳에서 조선인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추모제를 연다. 지난해엔 씨알재단을 비롯한 한국인도 함께한 덕에 역대 가장 많은 참석 인원을 기록했다. 양국 시민들이 한마음으로 간토대학살 진실 규명과 용서를 기원하는 모습에서 장 작가는 희망의 불씨를 봤다.
“간토대학살 문제를 양국 정부에만 맡겨선 해결이 안 됩니다. 한국과 일본 시민들 한 명 한 명이 힘을 모아 함께해야 합니다. 일본에도 과거를 바로잡으려는 양심적인 분들이 많습니다. 100주기를 계기로 긍정적인 미래를 향해 한 단계 진보했다고 생각합니다.”
장 작가와 씨알재단은 앞으로 우리나라 국회와 일본에서도 ‘넋은 예 있으니’ 사진전을 열 구상이다. 이를 통해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간토대학살을 ‘제노사이드’(대량학살)로 인정받는 것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