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이후 루터에 대한 평가 크게 갈라져
한편에선 이단자이자 윤리 저버린 타락자란 평가
비판적 태도로 교회 분열 일으킨 점 분명하지만
처음부터 새 교회 세우려던 건 아니라는 해석도
동시대 인물 예수회 창설 이냐시오 성인과 비교
흔히 종교 개혁이 마르틴 루터가 ‘대사부’의 본래 의미가 왜곡된 ‘면죄부’에 반발하여 시작되었다고 말하지만, 루터에 대한 평가는 종교 개혁 이후 심각하게 갈라졌습니다. 그를 신랄하게 비판한 당대의 역사가 요한네스 코칼레우스는 종교 개혁은 교회 분열의 원인이며, 참된 가톨릭교회에서 분열되어 나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배격한 것은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라고 비난하였습니다. 또한 루터를 배교한 수도자, 그리스도교 세계의 이단자, 윤리를 저버린 타락자로 치부하였습니다.
그러나 2017년 종교 개혁 500주년을 지내면서 가톨릭교회의 마르틴 루터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가 교회 분열을 일으킨 점은 분명하지만, 처음부터 가톨릭교회에서 벗어나 새로운 교회를 세우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고 해석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그는 엄격하고 철저한 ‘아우구스티노 은수자 수도회’(Ordo Ermitarum S. Augustini)에 소속된 수도승으로서 성경 연구에 몰두하였습니다. 그는 당시 가톨릭교회의 주교와 교황이 복음의 정신과 멀어졌다고 판단하며 교회에 비판적 태도를 드러내기 시작하였습니다.
루터의 생을 관통한 질문은 “나는 은혜로우신 하느님을 어떻게 발견할 것인가?”였다고 전해집니다. 중세 말의 시대적 상황은 크고 작은 전쟁과 전염병 등으로 많은 사람이 죽음의 위협에 놓이며 종말에 대한 두려움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자비롭고 은혜로운 하느님보다는 심판하시고 징벌하시는 하느님이 더 강조된 것도 이러한 분위기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단 사상을 막고 정통 신앙을 수호하고자 교회는 신자들이 교회의 정통 교리에 충실할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루터가 고뇌한 ‘자비로운 하느님’을 찾는 여정은 중세 교회에서 강조하는 심판하시고 벌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에 갇혀 있던 그에게 매우 절실하였습니다. 그는 자서전에서 어떠한 형태의 금욕과 단식으로도 자신의 내적 욕망의 죄의식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고, 자신의 노력으로는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심각한 좌절과 회의에 빠졌음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나 로마서의 한 구절, “복음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믿음에서 믿음으로 계시됩니다. 이는 성경에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라고 기록된 그대로입니다.”(로마 1,17)라는 말씀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 곧 죄의 굴레에서 해방된 구원의 체험은 자신의 공로나 선행이 아니라,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 메시지로부터 체험되는 복음의 힘으로 가능하고, 인간의 노력과 상관없이 무상으로 주어지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은총으로 인간은 의로움을 얻게 된다는 깨달음이 루터의 심장을 관통했던 것입니다. 그 뒤 루터는 종교 개혁을 이끌면서 라틴어 성경을 신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자국 언어인 독일어로 번역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성경 연구에 몰두하였습니다.
루터에 대한 평가는 다양합니다. 그러나 루터와 거의 동시대 인물이었고, 교회 안에서의 쇄신을 호소하며 예수회를 창설하여 교회의 지속적인 쇄신을 도모하여 일치를 위해서 헌신한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과 비교하면 마르틴 루터에 대한 평가는 더욱 쉬워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