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군에 있는 동안 저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세상을 떠났고, 그 일로 삶 전체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지난 30여 년간 제 자신을 위해 살았으니 남은 삶은 하느님과 이웃들을 위해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세례를 통해 이미 교회 안에 속한 사람이었기에 저의 바람은 자연스럽게 수도생활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졌습니다.”
21일 군종교구 비성대본당에서 첫 미사를 봉헌한 예수회 정홍철 신부는 사제의 길을 걷게 된 계기를 이렇게 말했다. 비성대본당은 정 신부가 2008년 세례받은 곳이기도 하다. 16년 만에 수도자이자 사제로 돌아온 것이다. 당시 세례를 베풀었던 김태현 신부가 2022년부터 다시 주임을 맡고 있다. 앞서 정 신부는 7월 3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39살의 나이로 사제품을 받았다.
공군장교로 복무하다 뒤늦게 수도자의 길을 걷게 된 정 신부는 입대 전 신자가 아니었다. “기초군사훈련을 받을 때에는 인성교육의 하나로 종교행사 참여가 권장됐습니다. 수녀님들이 비신자들을 위해 나눠주시는 가톨릭교회에 대한 소개나 교리에 대한 간추린 설명은 전혀 새로운 것이었기에 관심 갖게 되었죠. 수녀님의 초대에 영문도 모른 채 신청했고 그것이 세례로 이어졌습니다.”
정 신부는 군 복무를 마치고 공부를 이어가 연구원이나 교수가 되는 진로를 생각하고 있었다. “물리교육을 전공했고, 2008년 입대해 경남 진주 공군교육사령부 내에 있는 공군항공과학고등학교 과학교관으로 5년간 복무했습니다. 장래에 공군의 핵심 전력이 될 기술부사관을 양성하는 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쳤습니다.”
그랬던 그가 수도회에 입회한다고 하자 가족들은 깜짝 놀랐다. “가족 중엔 아무도 신자가 없었기 때문에 처음엔 성소에 대한 고민을 부모님께 말씀드리기를 주저했죠. 전역을 앞두고 입회를 허락받은 후 부모님께 통보하듯이 예수회에서 살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수련원에 있는 동안 어머니는 참 힘들어하셨습니다. 현재 어머니와 동생은 세례를 받았지만, 아버지는 아직 신자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마음은 더 단단해졌다. “군 생활하는 동안 성소에 대해 생각하게 됐고, 삶의 여러 양식들을 식별하게 되었습니다. 식별에는 시간이 필요했기에 2년 동안 연장 복무하면서 예수회와 함께 성소를 식별했습니다. 국가와 이웃에게 봉사할 수 있는 규칙적인 군 생활도 성격에 잘 맞았고, 원래 전공을 이어 공부하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저를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하고 싶었고, 그래서 예수회원이 되기를 청했습니다.”
정 신부는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자신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저에게 어찌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에 이 삶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제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저는 불행할 것입니다. 서품 전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에 있는 예수회 신학대학원 신학대학에서 공부 중이었고, 아직 그 과정을 마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다음 달 돌아가 이어서 공부하고 그 뒤 수도회가 파견하는 곳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