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양양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온 지 딱 일주일째 되던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걷기 연습을 하러 휠체어를 끌고 산책을 나갔다가 ‘아, 이건 아닌데’라는 통증을 느끼고 빠르게 집으로 돌아왔다. 쉬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날부터 땅에서 다리가 떨어지지 않았다. 일주일 전 가족여행 때까지만 해도 휠체어에 기대 절뚝이면서라도 걸었는데, 이제는 그조차 불가능해진 것이다. 일주일 만에 상황이 이렇게까지 나빠질 수 있다니. 몸 상태가 시시각각 안 좋아진다는 생각이 들자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변하는 상황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것이 내 마음을 덜 아프게 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지만, 어떻게 이렇게 하루아침에 삶이 곤두박질칠 수 있는 건지. 애석하기만 하다.
나는 가진 것을 하나씩 잃어가고 있다. 척추에 퍼진 암세포 때문에 그 좋아하던 춤을 출 수도 없고, 골반에 퍼진 암세포 때문에 뛸 수도 걸을 수도 편히 앉아있을 수도 없으며, 폐에 퍼진 암세포 때문에 마음껏 노래할 수도 없다. 입 안에 생긴 암세포 때문에 먹는 것도 자유롭지 못하고, 어깨에 퍼진 암세포 때문에 양치를 하려 칫솔 하나를 들어 올리는 것조차 힘이 든다. 내 방에서 화장실까지 급할 땐 2초면 뛰어가던 거리를 이제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1분이 넘게 겨우겨우 다리를 질질 끌고 간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하는 것까지 내 의지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릴까 봐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것이 두렵다. 그래도 감사를 한다. 다리를 질질 끌 수라도 있어서 감사합니다. 화장실을 저 스스로 다닐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밥을 입으로 먹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양치를 해낸 것에 감사합니다. 숨 쉴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하, 참으로 비참한 감사다.
가진 것을 하나씩 잃어가고 있는 현실에 좌절하다가 문득 ‘되돌려드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대가 없이 누려온 것이 정말 많았구나. 주님께서 하나씩 다시 거둬가시는 것일 뿐이구나. 그로 인해 그동안 내가 누린 것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느낄 수 있게 되었구나. 억울한 마음이 가득할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이 눈물 나게 감사했다. 되돌려드리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는다.
고통이 축복이라는 말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요즘은 어렴풋이 알 것만 같다. 아프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사소한 것들이 결코 사소하지 않은 주님의 엄청난 축복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 테니까. 남들이 모르는 세상의 진리를 나 혼자 몰래 깨달은 기분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서른다섯의 꿈 많은 내가 알아차려 버린 것이 안타깝다. 주신 재능으로 빛을 보며 조금 더 이기적인 삶을 누렸어도 되지 않았을까? 진리를 깨달았으니 이제 예전의 나로 다시 돌려주시면 안 될까? 그럼 내가 기적을 외치며 더 멋진 삶을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높고 푸르른 가을 하늘을 우러러보며 참으로 인간적인 희망을 던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