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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성인] 성녀 마리아 베르틸라 보스카르딘 (10월 20일)

1888~1922년, 이탈리아 출생 및 선종, 수녀, 백조가 된 미운 오리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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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마리아 베르틸라 보스카르딘

마리아 베르틸라 보스카르딘 성녀는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시기심 많은 알코올 중독자로 폭력적인 성격을 지녔었습니다. 가족들은 가장의 폭력을 피해 자주 집에서 도망쳐야만 했습니다.

마리아는 이런 집안 형편으로 인해 어려서부터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학교에 가는 날보다 집안일을 하며 동생들을 돌보거나 들판에 나가 일을 해야 하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특별한 재능도 없고 지능도 뒤처져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본당 신부는 그런 마리아에게 ‘미운 오리 새끼’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는데, 장차 빛나는 백조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일찍이 수녀가 되어 수도 생활을 하고 싶었던 마리아는 한 수도회에 입회 신청서를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여러 수도원의 문을 두드린 그녀는 결국 본당 신부의 도움을 받아 1904년 비첸차에 있는 ‘성심의 성녀 도로테아 수녀회’에 입회해 수도명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그 수도원에서 주방과 세탁실 소임을 수행하며 3년을 지낸 후 트레비소의 병원으로 보내져 식당 일을 하다가 간호학을 배우고 그 병원의 어린이 병동에서 간호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겸손하고 상냥하게 어린 환자들을 돌보면서 자신의 성소를 깨닫게 됩니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후 1917년 카포레토 전투 때 마리아가 활동하던 병원은 군인들의 통제를 받았습니다. 이에 마리아는 전투에서 다친 군인들도 돌봐야 했습니다. 공습이 계속되는 동안 마리아는 두려워하지 않고 환자들과 함께했고, 병원 관계자들도 그의 헌신적 봉사에 크게 감동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마리아의 건강이 악화했습니다. 이미 22살 때 수술한 종양이 재발해 재수술을 받아야 할 만큼 커졌고, 극심한 통증으로 고통을 겪었습니다. 마리아는 추가 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34살 젊은 나이에 선종했습니다. 마리아의 생애는 순탄하지 않았지만, 어린 환자와 병자에 대한 특별한 배려와 사랑으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선종 1년 뒤 트레비소 병원에는 “천사처럼 인간의 고통을 덜어준 선택받은 영혼이자 영웅적 선량함을 지닌 마리아 베르틸라 보스카르딘 수녀”를 기리는 기념패가 세워졌고, 많은 이들이 그녀의 무덤을 찾아 기도하면서 여러 차례 치유의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마리아의 유해는 시복 절차가 시작되면서 비첸차 수녀원으로 옮겨졌습니다. 1961년 5월 11일 요한 23세 교황에 의해 거행된 시성식에는 마리아의 가족뿐만 아니라 그에게 간호를 받았던 환자들과 그 가족들도 참석해 마리아의 헌신과 사랑을 기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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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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