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교회 교황이었던 에바리스토 성인은 교계 제도의 기초를 세운 인물입니다. 그에 대한 기록은 희박할 뿐만 아니라 문헌에 따라 약간씩 다릅니다. 프랑스 리옹의 이레네오 성인이나 교회사가인 카이사레아의 에우세비우스의 증언에 따르면, 에바리스토는 클레멘스 1세 성인을 계승해 교황직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리베리우스 교황표」 등 다른 문헌들은 성 아나클레토 교황 다음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연대 교황표」에는 그가 본래 안티오키아에서 살던 그리스인이었으며, 그의 부친은 베들레헴의 작은 마을 출신 유다인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바리스토는 교황으로 재위하던 기간, 로마 시내에 있던 25개 본당을 구역에 따라 교구로 나누고 각 교구에 명칭을 부여하며 일정한 수의 본당을 관할하게 했다고 합니다. 이는 아마 당시 신자 수가 점차 증가함에 따라 관리하기 위한 조치로 보입니다. 그는 5명의 사제에게 주교품을, 6명에게 사제품을 주었습니다. 다른 기록을 보면, 교회 초기의 일곱 부제의 직분에 따라 7명의 연장 사제들에게 각 교구를 담당하게 했다고도 합니다.
에바리스토의 선종과 관련해서도 다양한 기록들이 존재합니다. 에우세비우스의 「연대기」에는 그가 9년 동안 로마의 주교직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고, 「연대 교황표」에는 10년간 재직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리베리우스 교황표」에는 그가 13년 10개월 동안 교황으로 사도좌 직무를 수행했다고 합니다. 에우세비우스의 증언처럼 성 클레멘스 1세 교황이 트라야누스 황제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면, 에바리스토는 101년경부터 사도좌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에바리스토를 성인이자 순교자로 공경하고 있음에도 그가 실제로 순교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현대의 발굴에 의하면, 그는 이전에 알려졌던 것처럼 바티칸 언덕에 있는 성 베드로 사도의 무덤 옆에 묻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이유 등으로 인해 1969년 전례력 개정과 함께 그의 축일이 로마 보편 전례력에서 삭제되었습니다.
옛 「로마 순교록」은 10월 26일 목록에서 에바리스토를 교황이자 순교자로 기록했는데,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0월 27일 목록에서 트라야누스 황제 때 성 베드로 사도 이후 네 번째로 로마 교회를 이끈 에바리스토에 대해 언급하면서도 순교자라는 호칭을 삭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