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5~1907년, 리투아니아 출생 및 폴란드 선종, 사제, 보편 교회 모든 그리스도의 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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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칼리노프스키 성인은 1835년 9월 1일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귀족 출신의 저명한 수학교수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라파엘은 귀족들을 위한 학회에서 아버지에게 교육받아 우수한 학업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라파엘은 1851년부터 1년 동안 러시아 호리호르키에 있는 농업학교에서 동물학·화학·농학과 양봉을 배우고, 1853~1857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공병학교에서 학업을 이어나갔습니다. 공학 학위를 취득하고 위관급 장교로 공병학교의 수학강사가 된 라파엘은 1859년에 러시아의 쿠르스크와 우크라이나의 키이우·오데사를 잇는 철도 설계를 담당했습니다. 1862년 대위로 승진해 벨라루스 브레스트로 배치된 뒤에는 그곳에서 말씀과 교리를 가르치는 주일학교를 시작했습니다. 라파엘은 주일학교 운영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대며 누구든지 와서 배울 수 있도록 했습니다.
1863년 러시아의 억압에 대항해 폴란드 대봉기가 발발했을 때, 라파엘은 러시아군에서 제대하고 빌뉴스의 반란정부 각료가 됐습니다. 그러면서 반란정부에 죄수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거나 집행하지 않겠다는 양해를 구했습니다. 1864년 3월 24일 러시아는 라파엘을 체포해 반란의 책임을 물어 사형을 선고했으나, 다시 시베리아에서 10년간의 중노동에 처하는 것으로 감형했습니다. 복역 기간 중 라파엘은 놀라울 만큼 강인한 정신력과 인내심, 사랑으로 동료 죄수들에게 기도의 정신과 평화, 희망을 갖도록 도우며 위로했습니다.
1874년 노역에서 풀려난 라파엘은 리투아니아의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프랑스 파리로 가 3년 동안 개인교사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1877년 마침내 오랫동안 간직해 온 성소에 응답해 오스트리아 그라츠에 있는 맨발의 가르멜회에 입회, ‘성 요셉의 라파엘’이란 수도명을 받았습니다. 라파엘은 헝가리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1882년 1월 15일 폴란드 크라쿠프 근처의 크체르나에서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고해성사를 통해 죄에 빠진 수많은 영혼을 구하고, 교회 일치를 위해 모든 열정을 쏟아부은 라파엘은 1907년 11월 15일 자신이 바도비체에 설립한 수도원에서 하느님 품에 안겼습니다. 라파엘의 유해는 크체르나 소재 수도원 묘지에 안장됐습니다.
라파엘은 살아있을 때나 선종 후에나 성덕에 있어 모든 사람들로부터 큰 칭송을 받았습니다. 1934년부터 크라쿠프대교구에서 라파엘의 시복 절차가 시작됐고, 1983년 6월 22일 크라쿠프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그의 시복식이 거행됐습니다. 이후 1991년 11월 17일 시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