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 마리아 토마시 성인은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알리카타에서 태어났습니다. 부친은 팔레르모의 공작이었고, 람페두사 섬의 왕자 칭호를 가졌습니다. 요셉의 네 누이는 부친이 스페인 팔마에 세운 베네딕토 수녀원에서 성장했습니다. 요셉은 어릴 때부터 좋은 교육을 받았는데, 소년 시절 이미 훌륭한 그리스어 학자였습니다. 교회 음악에도 비상한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테아틴 수도회 총장이 그의 재능을 높게 평가할 정도였습니다.
수도생활에 대한 꿈이 싹트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습니다. 그때 마침 요셉의 어머니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세속에 살면서, 특정 수도회와 관계를 맺고 그 수도회 정신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제3회원이 되었습니다. 요셉의 부친도 비슷한 결정을 하면서 그의 소원대로 어렵지 않게 수도회에 입회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1665년에 팔레르모에 있는 테아틴 수도회에 입회해 왕자의 신분을 포기하고, 수련기를 거쳐 이듬해 첫 서원을 했습니다. 이후에는 메시나로 가서 그리스어를 공부하고, 이후 로마에서 페라라와 모데나 대학을 다녔습니다. 1673년 12월 25일에 사제로 서품되었습니다.
요셉의 일생은 기도와 학문 연구에 모든 것을 바치는 은수자의 삶에 가까웠습니다. 요셉은 그리스 철학, 성경, 성무일도를 주로 연구했습니다. 재능이 너무나 뛰어나 그의 히브리어 교사이던 랍비는 유다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까지 결심할 정도였습니다.
요셉의 첫 저술은 「성 아우구스티노의 스페쿨룸」이며, 1680년에는 고대 전례를 서술한 「코디체스 사크라멘토룸」을 펴냈습니다. 「시편」은 주세페 카루스(J. M. Carus)라는 필명으로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1697년 요셉은 인노켄티우스 12세 교황에게 순종하는 뜻으로 바티칸으로 들어갔고, 1704년에는 교황청 축성생활회와 사도생활단부(수도회부) 신학자로 임명되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막중한 책임을 안게 됐음에도 요셉은 늘 소탈한 생활을 했고, 동료들과 성가를 불렀습니다. 음식도 단출하게 즐겼습니다. 요셉은 한마디로 하느님 사랑에 푹 빠진 사람이었습니다. 미사에 참여하는 요셉을 보면 그에게 특은이 내렸음을 누구나 인정했습니다. 피조물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애정 또한 하느님 사랑을 증거하고도 남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1712년 추기경에 서임된 요셉은 자신의 죽음을 예고했는데, 공교롭게도 클레멘스 11세 교황이 12월 중병에 들자 요셉은 “교황이 회복되고 내가 곧 눈을 감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대로 요셉은 1713년 1월 1일 로마에서 선종했습니다.
요셉은 1803년 비오 7세 교황에 의해 시복됐고, 1986년 10월 12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