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첼라 성인은 예로니모 성인이 “모든 성인과 로마 부인들의 영광”이라고 칭송했던 사람입니다. 마르첼라는 325~335년 사이 이탈리아 로마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었고, 자비롭고 경건한 어머니의 보살핌 속에 훌륭한 교육을 받고 성장했습니다. 결혼한 뒤에는 7개월 만에 자식이 없는 상태에서 남편과 사별합니다.
이때 마르첼라는 남은 생애를 자선과 기도, 그리고 고행하며 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집정관 케레알리스의 구혼도 거절하고 동방 은수자들의 생활을 본받으며 살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사실 마르첼라가 어렸을 때 그의 어머니는 아리우스파의 박해로 추방당해 로마에 피신했던 알렉산드리아의 성 아타나시오 주교와 그 일행을 아벤티노 언덕에 있는 저택으로 모신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 마르첼라는 그들을 통해 이집트 테베의 은수자들과 안토니오 성인의 생애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마르첼라는 고기와 술을 끊는 절제는 물론, 영적 독서와 기도에 열중하고 사도와 순교자들의 성당을 방문하며 기도하는 데 모든 시간을 바쳤습니다. 마르첼라의 모범에 감동한 로마의 여러 귀부인과 과부, 젊은 여성들이 그의 지도를 받으러 모여들면서 짧은 시간에 이들로 이뤄진 공동체가 로마에 여러 개 생겨났습니다. 마르첼라는 자신과 어머니를 주님께 봉헌하면서 아벤티노 저택을 수도자로 살고자 하는 이들의 모임과 활동의 중심지로 만들었습니다.
마르첼라는 382년 성 다마소 1세 교황이 예로니모를 로마로 불렀을 때, 그에게 숙소를 마련해주고 환대하며 집에 초대했고, 그에게서 성경 강의와 영적 지도를 받았습니다. 이후 바울라 성인과 에우스토키움 성인은 영적 스승인 예로니모가 있는 성지 베들레헴으로 가서 스승을 도와 수도원을 설립하고 수도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마르첼라는 나날이 성장하는 로마 공동체를 돌보기 위해 남았습니다. 나중에는 프린치피아 성인과 함께 시골의 작은 집으로 거처를 옮겨 계속 성경과 교리 공부에 열중하며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예로니모에게 편지를 보내 도움을 받곤 했습니다.
410년 알라리크 1세 휘하의 고트족이 로마를 약탈하러 왔을 때였습니다. 고령이었던 마르첼라는 그의 막대한 재산을 빼앗으려는 고트족 병사들에게 붙잡혀 채찍질과 구타를 당하는 고초를 겪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마르첼라는 사랑하는 제자 프린치피아를 살려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병사들은 이미 마르첼라가 모든 재산을 가난한 이웃에 나눠준 것을 알고, 그를 피신처로 지정된 성벽 밖 성 바오로 대성당에 풀어줬습니다. 마르첼라는 이때 입은 상처로 몇 달 후 프린치피아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