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 중 한 명인 로베르토 사우스웰 성인은 어려서부터 사제를 꿈꿨습니다. 로베르토는 프랑스 파리 클레르몽 대학에서 예수회의 토마스 다비셔를 만나 그의 지도를 받으며 예수회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로베르토는 이탈리아 로마까지 걸어가 1580년 예수회원이 되어 수련기를 마친 뒤 예수회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 1584년 학위를 취득한 다음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1550년대 영국은 에드워드 6세, 메리 1세, 엘리자베스 1세 등 세 군주의 치세를 거치며 국교인 성공회와 가톨릭교회를 오가는 혼란을 겪었습니다. 이 시기 이들은 자신의 종교에 따라 상대 종교를 박해했습니다. 로베르토는 1586년 영국 선교사로 자원해 헨리 가넷 신부와 함께 출발했습니다. 7월 17일 영국 해안에 도착한 그들은 각자 런던을 향해 떠났습니다. 로베르토는 런던과 그 일대에 대한 선교 책임을 맡았고, 헨리는 잉글랜드 중부 지역에서 선교하게 됐습니다. 로베르토는 비밀리에 가톨릭 신자 집에 머물며 다른 선교 사제들의 활동을 돕고 그들에게 은신처를 소개해줬습니다. 또 감옥에 갇힌 이들을 돌보고, 신자들을 만나 미사를 봉헌하고 성사를 베풀었습니다.

헨리가 영국 예수회 책임자가 되어 런던으로 온 뒤에는 주로 런던 외 지역에서 활동했습니다. 1587년경 헨리가 신자들을 위한 출판물을 인쇄하기 위해 은밀히 가톨릭 출판사를 만들자 로베르토는 그 일을 적극 도왔습니다. 평소 문학에 소질이 많아 상당한 시간을 글을 쓰는 데 보냈기 때문입니다.

6년 정도 검거를 피하며 활동하던 로베르토는 누군가의 배신으로 1592년 6월 25일 체포됩니다. 가톨릭 사제 사냥꾼으로 유명한 리차드 톱클리프는 로베르토를 체포한 뒤 자신의 집에 가두고 다른 사제들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고문했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자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명령으로 6월 28일 로베르토를 게이트하우스 감옥으로 보냈습니다. 그곳에서 로베르토는 추밀원의 심문과 혹독한 고문을 받았지만,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벌레가 기어 다니는 더러운 감옥 안에서 시체처럼 누워있는 아들을 본 로베르토의 아버지는 여왕에게 “아들에게 죄가 있으면 처형하고, 아니면 신사답게 대우하라”는 탄원서를 보냈습니다.

얼마 후 로베르토는 런던탑으로 이송됐고 그곳에서 여러 편의 시를 썼는데, 이것은 가톨릭 신자들을 격려하는 목적을 넘어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간의 화합을 노래한 것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는 1595년 2월 18일 뉴게이트 감옥으로 이송돼 사흘 뒤 타이번에서 교수형과 극형을 받고 순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