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 살 앞둔 부모님과... 여행 경험 없던 부부 함께... 추억 쌓고 신앙 키운 기쁨 전해
전국 167곳 성지순례 완주자들이 20일 ‘한국 교회 최대 순교 성지’ 서울대교구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에서 축복장을 받았다. 주교회의 순교자현양과 성지순례사목위원회 위원장 권혁주 주교는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콘솔레이션홀에서 완주자 168명에게 축복장을 수여했다. 이로써 누적 완주자는 1만 746명이 됐다.
완주자 대표로 소감을 발표한 이미숙(마리아, 대구대교구 성동본당)씨는 “순례를 하면서 가족 간 정이 깊어지고 주님 안에서 행복을 느꼈다”며 “가장 감사할 일은 내년에 아흔이 되는 부모님과 여생 동안 함께 성지순례하기로 약속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씨는 “평생 불교 신자로 사신 아버지가 제 권유로 가톨릭에 입교했지만 금방 냉담에 빠지셨다. 그런데 지난 11월 함께 제주도 성지순례를 다녀오고 나서부터 행복해하면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계신다”며 “제게 성지순례는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라고 덧붙였다.
부부가 함께 38년 동안 성가대로 활동했다는 박규태(시몬, 수원교구 범계본당)씨는 “지난 5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성가대를 잠시 쉬면서 아내와 전국 성지를 순례했다”며 “여행을 거의 해본 적 없던 저희 부부에게 7개월간의 순례는 많은 추억을 쌓고, 신앙도 키우는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전했다.
대전교구 서천본당 ‘예수성심성지순례단’ 단원 이창순(안젤라)씨는 “부산교구 죽림굴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첩첩산중에서 기쁨으로 미사를 드린 과거 선조들을 상상해보니 지금 제 신앙의 처지는 사치로 여겨졌다”며 “순례 중 기억해야 할 것은 선조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신앙이 이어질 수 있었고, 우리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권 주교는 이날 미사 강론을 통해 완주자들에게 “시편 1장 1~3절을 덕담으로 드리고 싶다”며 “여러분이 주님께 신뢰를 두고, 순례의 길을 ‘희망의 순례자’로서 굳건히 걸어가면 모든 일이 잘되리라는 축복의 말씀”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늘 특별히 주님의 이런 축복을 받아 그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자”고 당부했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관장 원종현 신부는 수여식에 앞서 특강을 했다. 원 신부는 “서소문성지는 조선 시대 국가 공식 처형 터였으며, 단일 성지로는 가장 많은 성인을 배출한 장소”라며 “한국 103위 성인 중 44위, 124위 복자 중 27위가 이곳에서 순교했다”고 알렸다.
주교회의 순교자현양과 성지순례사목위원회는 올해 하반기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개정 증보판을 펴낼 계획이다. 지난 2019년 개정 이후 6년 만으로, 지금보다 늘어난 180여 곳 성지가 수록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