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로 외동딸 상은씨 떠나 보내고 가톨릭 세례받은 이성환·강선이씨 부부
이태원 참사로 외동딸을 잃은 이성환·강선이씨 부부가 딸 고 이상은씨의 방에 서있다.
‘가톨릭 세례받고 명동대성당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기.’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로 세상을 떠난 고 이상은씨의 꿈이었다. 예비신자 교리를 채 못 마치고 25살에 먼저 하늘나라로 간 금지옥엽 외동딸의 소망을, 3년 만에 부모가 대신 이뤘다. 이성환(요한 마르코, 59)·강선이(로즈마리, 55)씨 부부는 지난 9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부부는 하늘에서 딸이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리라 여겼다. 그리고 딸이 원했던 성당 혼인성사를 대신해 부부는 혼인갱신식을 했다. 마침 올해 결혼 30주년을 맞은 이씨 부부를 19일 서울 자택에서 만났다.
집안은 세례 축하 선물로 받은 여러 성물로 가득했다. 현관에서 가장 가까운 방이 상은씨가 쓰던 방이다. 당장이라도 주인이 돌아올 것처럼 모든 것이 깨끗하게 잘 정돈된 모습이다. 창틈으로 비치는 햇살처럼 화사한 미소를 지은 상은씨의 사진과 그림이 여기저기 가득하다. 생전 딸은 ‘웃음이 예쁘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형제가 없어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유독 좋아한 데다 성격이 밝고 활발해 인기가 많았다.
마지막까지 고인의 곁에 함께했던 휴대폰도 켜진 채 충전기에 꽂혀 있다. 세상을 떠난 후에도 고인을 그리워하는 친구와 지인들의 연락이 온다. 이처럼 상은씨의 자취가 아직도 생생한 이곳에서 어머니 강선이씨는 밤마다 초를 피우고 딸의 영혼을 위해 간절히 기도한다.
“저는 사실 상은이의 버킷리스트(소망 목록)가 어떤 것이 있는지 잘 몰랐어요. 나중에 메모를 발견하고 남편과 함께 꿈을 대신 이뤄주기로 했죠. 제일 먼저 예비신자 교리 수업이 떠올랐어요. 그걸 가장 좋아할 것 같아서요.”
1년 전 강씨가 먼저 교리교육을 시작했고, 뒤이어 남편도 동참했다. 딸을 위한 마음으로 개근한 부부는 마침내 한날한시에 주님의 자녀로 거듭났다. 부모와 함께 상은씨도 ‘실비아’라는 이름으로 화세(火洗)를 받았다. 생전 고인이 바라던 세례명 중 하나였다.
“17일 세례받고 처음으로 세종특별자치시 선산에 있는 딸의 무덤을 찾았어요. 그리고 전보다 한층 더 편한 마음으로 작은 성물을 갖다 놓으며 이렇게 말했죠. ‘상은아, 엄마 아빠 드디어 세례받았다’고요.”
이씨 부부는 그동안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애타게 촉구하면서 가톨릭에 입교하기까지 많은 눈물을 흘렸다. 교리를 받을 때에도, 명동대성당에서 혼인갱신을 할 때에도 두 사람은 상은씨를 생각했다. 아버지 이성환씨는 “상은이가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이 자리에 상은이가 있어야 한다는 안타까운 마음에서 눈물이 많이 났다”고 전했다.
강씨는 “신약 성경 마르코 복음을 필사하면서 예수님을 눈앞에서 잃은 성모님의 심정에 이입됐다”고 말했다. “예수님께서 며칠에 걸쳐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성모님 가슴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제가 제일 아픈 줄 알고 살았는데, 성모님께선 얼마나 더 고통스러우셨을까,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두 사람에게 신앙은 딸 상은씨가 남기고 간 ‘소명’이자 그에게로 가는 ‘길’이다. 부부는 “하느님의 뜻이 사랑이며 자비인 만큼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면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삶을 살 것”이라고 다짐했다.
“상은이가 미국 미주리에 있는 시골 동네로 교환학생을 다녀오고 미국 공인회계사 공부를 시작하면서 이런 말을 했어요. 너무 평화로워 보인다고 그곳에 살고 싶다더라고요. 상은이 뜻에 따라 다음엔 그곳에 가볼까 봐요.”
이학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