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16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금주의 성인] 성 카테리 테카크위타 (4월 17일)

1656~1680년, 미국 출생 및 캐나다 선종, 모호크족의 백합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카테리 테카크위타 성인. 굿뉴스
 

카테리 테카크위타 성인은 오늘날 미국 뉴욕 주 오리스빌 인근 모호크족 마을, 오세르네논에서 모호크족 추장인 아버지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알곤킨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테카크위타의 어머니는 당시 북미 프랑스 식민지이자 무역 중심지였던 뉴프랑스(Nouvelle-France)의 세 개의 강(Three Rivers) 지역에서 프랑스 정착민과 함께 자라며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다 1653년쯤 모호크족에 납치돼 추장과 결혼해 테카크위타를 낳은 것입니다. 테카크위타의 부모와 남동생은 그가 4살이던 1660년 천연두로 모두 사망했습니다. 천연두는 테카크위타의 얼굴에도 흉터를 남기고 시력을 훼손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테카크위타는 이모와 거북이 부족의 추장이 된 삼촌에게 입양됐습니다. 1667년 테카크위타가 속한 모호크족이 모호크강 건너편으로 이주해 정착한 코그나와가 인디언 마을(오늘날 미국 뉴욕주의 폰다)에 예수회 선교사 3명이 방문해 사흘간 머문 적이 있었습니다.

테카크위타는 바로 세례받진 않았으나, 그때부터 예수회 선교사들의 가르침 속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삼촌과 부족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반대가 가볍지만은 않았습니다. 전통에 따라 테카크위타는 일찍부터 결혼을 강요받았지만, 큰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동정녀로 살고자 저항했습니다. 예수회 선교사 쟈크 드 랑버빌 신부가 교리를 가르쳐줬고, 테카크위타가 20살이 된 1676년 4월 5일 부활절에 가타리나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모호크족 언어로 카테리 테카크위타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그녀의 개종과 세례를 반대하는 이들의 탄압은 점점 심해졌습니다. 상황이 악화해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자 예수회 선교사는 테카크위타가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캐나다 퀘벡 주 몬트리올 근처 그리스도교 마을인 카나와케로 피신하도록 도왔습니다.

테카크위타는 320㎞가 넘는 숲을 지나 1677년 10월 마을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다른 인디언 원주민들을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3년 동안 예수회원의 영적 지도를 받으며 기도와 참회, 자선과 금욕의 삶을 실천하면서 노인과 병자들을 사랑으로 돌봤습니다. 1677년 12월 25일 성탄절에 첫영성체를 하고, 1679년 3월 25일 성모 영보 축일에 예수회 신부 앞에서 동정서원을 했습니다.

테카크위타는 24살의 젊은 나이에 건강이 악화해 1680년 4월 17일 성주간 수요일 오후 3시에 병자성사를 받고 노자성체를 모신 뒤 선종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말은 “예수님, 성모님, 사랑합니다”였습니다. 테카크위타의 죽음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인디언들의 신앙적 열정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는 ‘모호크족의 백합’으로도 불립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5-04-09

관련뉴스

말씀사탕2025. 4. 16

1요한 2장 1절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