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6?~551년, 프랑스 출생 및 선종, 주교, 투르의 그레고리오 성인의 삼촌
갈로 성인. 굿뉴스
갈로 성인은 486년경 프랑스 중남부 오베르뉴 클레르몽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갈로의 아버지는 원로원 의원 출신, 어머니는 리옹에서 공경받는 순교자 가문 출신으로 신심 깊은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갈로는 부모의 도움으로 훌륭한 교육을 받고 성장했습니다.
존경받는 원로원 의원의 딸과 결혼하기를 원했던 아버지의 뜻과는 달리 갈로는 수도생활에 대한 열망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507년경 그는 브리우드의 율리아노 성인 무덤에서 기적같은 치유를 경험한 뒤 수도자가 되기로 마음을 굳힙니다. 그래서 고향 근처 쿠르농(오늘날의 쿠르농도베르뉴)의 수도원으로 가 입회 신청을 했습니다. 수도원장은 부친의 허락을 받을 때까지 입회를 허락하지 않았지만, 갈로는 오래지 않아 아버지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는 뛰어난 인품과 경건함, 유난히 좋은 목소리로 시편을 노래하면서 수도자 사이에서 돋보였습니다.
수도원에서는 클레르몽의 성 퀸시아노 주교를 만나게 됐는데, 주교는 갈로의 지성과 경건함을 높이 평가해 수도원 밖으로 데려가 사제품을 주었습니다. 갈로는 프랑크 왕국의 동부 지방인 아우스트라시아의 테우데리크 1세 왕이 오베르뉴를 점령한 후 트리어 왕궁에 있는 왕실 성당의 공식 성가대원으로 불려갔습니다. 525년경 퀸시아노 주교가 선종한 후에는 만장일치로 후임 주교로 선출되었습니다.
갈로는 겸손과 애덕 실천, 사도적 열정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온유함과 인내로도 유명했습니다. 그는 왕이 임명한 총독에 맞서 교회 권리를 수호하고자 노력했고, 535년 클레르몽 공의회와 제4차(541년)·제5차(549년) 오를레앙 공의회에도 참석했습니다. 투르의 성 그레고리오 성인의 삼촌이기도 한 갈로는 생애 말, 조카를 교육하는 데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습니다.
갈로는 551년 5월 14일에 선종한 뒤 생 로랑 성당에 묻혔습니다. 그의 비문은 시인으로 유명한 베난시오 포르투나토 성인이 썼습니다. 오늘날 갈로의 유해는 클레르몽페랑의 노트르담 뒤 포 대성당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옛 「로마 순교록」은 15세기 이후 정해진 대로 7월 1일 목록에서 오베르뉴 지방 클레르몽의 성 갈로 주교 이름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1969년 로마 보편 전례력 개정 이후 갈로의 기념일은 선종한 날인 5월 14일로 변경되었고,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5월 14일 목록으로 옮겨 “프랑스 아키텐 지방의 클레르몽페랑에서 투르의 성 그레고리오의 삼촌이자 겸손하고 온화한 사람인 성 갈로 주교를 기념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