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타 성인은 1381년경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로카포레나에서 태어났습니다. 리타는 어릴 때부터 수도 성소에 관심을 가졌지만, 부모는 12살밖에 되지 않은 딸을 강제로 혼인시켰습니다. 리타는 원치 않는 결혼 후 두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어린 아내를 학대하는 남편의 폭력으로 18년간의 결혼생활은 불행했습니다. 남편은 결국 누군가와 다툼 끝에 살해당했습니다. 리타의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두 아들마저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죽게 되자, 그는 더욱 간절히 하느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본래 꿈이 수녀였던 리타는 카시아에 있는 성 아우구스티노회에 세 번이나 입회 신청서를 냈지만, 혼인 경력의 이유 등으로 번번이 거절당했습니다. 하지만 리타는 포기하지 않았고, 더욱 간절히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리타가 평소처럼 집에서 밤새 기도하던 중 수호성인들의 도움으로 순식간에 수도원 기도방에 있게 되는 기적을 경험합니다. 아침에 기도방에서 리타를 발견한 수녀들은 하느님 뜻으로 여겨 예외적으로 그의 입회를 허락했다고 합니다.
이후 리타는 1457년 5월 22일 선종할 때까지 자신처럼 불우한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두고, 철저한 고행과 기도생활에 전념했습니다. 리타는 여러 차례 환시를 체험했고, 선종하기 15년 전에는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 모습과 같은 상흔을 이마에 받아 주님의 고난에 동참했습니다. 이 상처는 리타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고 선종 이후에도 남았습니다. 여러 해를 두고 이어진 유해 발굴에서 리타의 시신은 부패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리타는 1626년 7월 16일 우르바노 8세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고, 1900년 5월 24일 레오 13세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자신의 불우한 처지에도 좌절하지 않고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으로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봉사한 리타는 특별히 ‘좌절하고 실망한 사람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습니다.
교회 미술에서 리타는 보통 이마에 상처 난 모습이나 가시관을 쓰거나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그리고 장미꽃과 함께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나이 들어 몸이 쇠약해진 리타가 한겨울에 자신을 찾은 친척에게 고향 집 정원에 핀 장미를 가져다 달라고 한 일화에서 비롯됐습니다. 친척이 속는 셈 치고 리타의 고향 집에 갔더니 장미가 활짝 피어 있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래서 일부 지역에서는 리타의 축일 미사에 장미를 봉헌하고 축복한 후 서로 나누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