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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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입장하세요!”… 망가진 묵주 되살리는 묵주병원

성당 성물방에 ‘묵주병원’ 개원인턴·레지던트 과정으로 전문성 더해무상 수리부터 해외 기부까지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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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주 닥터스가 묵주병원 본원인 예쁜기도에서 수리한 묵주를 보여주고 있다. 허은진·조해인·안예나씨와 권묘정 본원장 (왼쪽부터)

 


요즈음 성당에 병원이 생기고 있다. 진료의뢰서를 쓰고, 입·퇴원 절차도 밟아야 한다. 그런데 환자가 사람이 아니다. 게다가 병원 위치도 성물방이기까지. 바로 영원한 ‘기도의 동반자’를 치료하는 곳, ‘묵주병원’ 이야기다.

현재 묵주병원이 문을 연 곳은 수도권 5개 성당. 성물방에 놓인 전용 바구니에 묵주를 넣으면, 해당 성당 소속 ‘묵주 닥터스’가 가져가 무상으로 치료해 돌려놓는다. ‘여유 있게 기다려 주시라’는 당부는 덤이다.

평범한 신자였던 묵주 닥터스는 어떻게 낡거나 망가진 묵주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솜씨 좋은 기술자가 됐을까. 그 비결이 궁금해 묵주 닥터스 양성소인 묵주병원 본원을 찾았다. 인천 부평구 한 상가 건물(부평대로 167번길 54) 4층에 자리한 가톨릭 공방 겸 성물방 ‘예쁜기도’다.

 

 

 


국내 유일의 묵주병원, 예쁜기도

지난해 묵주병원 1호 분원이 개원한 부평1동성당에서 걸어서 4분 거리. ‘예쁜기도’ 내부는 묵주 닥터스가 뿜어내는, 무더운 날씨보다 더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했다. 예쁜기도 대표이자 묵주병원 본원장 권묘정(베로니카, 부평1동본당)씨의 지도 아래 묵주 수리에 한창이었다. 권 원장은 자신이 교적을 둔 부평1동본당 분원장도 맡고 있다.

묵주 닥터스가 둘러앉은 탁자에는 ‘중환자’들이 온갖 수선 재료와 함께 놓여있다. 훼손 정도가 심한 묵주를 가리키는 이들만의 표현이다. 묵주 알을 다른 비슷한 것으로 대체하는 경우는 ‘장기이식’, 새로운 재료로 수선하는 방식은 ‘성형수술’이라고 한다.

가벼운 수리는 저마다 집에서 혼자 하지만, 새 재료가 필요한 중증치료 건은 본원장 도움을 받아 해결한다. 각 분원에서 모아온 묵주를 담은 비닐봉지 겉면에는 환자 정보가 적혀 있다. 수선할 내용을 비롯해 의뢰일과 보호자 이름·세례명·연락처 등이다. 대수술을 마친 중환자들은 다시 비닐봉지에 들어가 주인에게 돌아가기를 기다린다.

‘묵주병원’이라는 이름과 의료용어에서 따온 은어는 모두 권 원장이 고안했다. 딸을 낳기 전까지 10년 넘게 간호조무사로 일한 경험에서 나왔다. 이후 그는 가톨릭 신앙을 갖고, 성물 제작이라는 새 길을 찾게 됐다.

“갓 태어난 아이를 보니 험한 세상에서 자신을 지킬 힘을 갖게 해주고 싶었죠. 그때 떠올린 게 ‘신앙’이었어요. 마침 집 바로 앞이 부평1동성당이었고, 평소 호감이 있어 가톨릭에 마음이 기울었죠. 그러던 중 비슷한 시기에 아기를 낳은 친한 친구가 예비신자 교리교육을 시작했다고 근황을 전해왔어요. 곧장 ‘나도 같이 가자’고 말하고 둘이서 나란히 유모차를 끌며 성당을 오갔죠. 그리고 2016년 마침내 세례를 받았어요. 모든 게 맞아떨어진 덕분이죠.”

 

 

 


사연이 있는 소중한 묵주들

새내기 가톨릭 신자인 권 원장은 유독 묵주에 호기심이 갔다. 손재주가 좋았던 그는 묵주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고, 서울 동대문종합시장에서 재료를 구해 도전했다. 그렇게 집에서 하나둘씩 만들다 어느덧 ‘예쁜기도’란 이름으로 온라인 사업자등록까지 했다. 묵주에 이어 기도초 제작까지 하다 보니 집에서 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었다.

운 좋게도 지금 예쁜기도 자리인 상가를 괜찮은 가격에 구했다. 2023년 9월 이곳에 공방 겸 성물방을 열었는데, 온라인으로만 팔 때보다 수익이 더 많았다. 받은 만큼 나누고 싶다는 열망이 커졌다. 금전적 기부는 벌이에 따라 액수가 달라질 것 같아 신경 쓰였다. 불현듯 묵주를 만든다는 사실을 아는 본당 신자들이 종종 묵주를 고쳐달라고 부탁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마다 ‘수소문해서 내게 부탁할 정도면 정말 소중한 묵주겠다’고 짐작했다. 실제 가족의 유품이나 외국에서 어렵게 구한 묵주 등 대부분 사연이 있었다. 100년 역사를 지닌 묵주를 수선한 경험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인턴·레지던트 과정 필요한 묵주 닥터스

이런 경험에 착안해 권 원장은 ‘신앙의 유산’인 묵주를 고쳐주는 재능기부에 나섰다. 본원에 이어 부평1동성당에 첫 묵주병원을 열었고, 동료를 늘리기 위해 묵주 닥터스 교육을 시작했다. 묵주 수선에 필요한 기본 교육인 인턴 과정 3개월을 완수하면 레지던트가 되는 방식이다. 묵주는 만들 줄 알아야 고칠 수 있다. 그 기초는 매듭이다. 해외 묵주에서 주로 사용하는 번데기 매듭부터 시작해 내구성이 더 좋은 전통 매듭인 합장·연봉·도래 매듭을 차차 배워나간다. 마지막 관문인 가락지 매듭까지 완전히 익히면 마침내 인턴 과정을 마치고 레지던트로 승격한다.

어엿한 묵주 닥터스인 레지던트는 본당 신부에게 허락을 구해 성물방에 묵주병원을 개원할 수 있다. 부평1동성당에 이어 지난해 11월 수원교구 호계동성당에 2호 분원이 문을 연 데 이어, 수원교구 오전동성당과 율전동성당에 3·4호 분원이 들어섰다. 마지막으로 지난 5월 인천교구 서운동성당에 5호 분원이 개원했다.

이날 함께한 묵주 닥터스 허은진(로사리아, 서운동본당 분원장)씨와 안예나(소화데레사, 호계동본당 분원장)씨도 묵주를 고쳐주고 뿌듯했던 경험을 공유했다. 특히 어르신 신자들이 묵주를 받아들고 아이처럼 기뻐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조해인(마리 스텔라, 수원교구 서하남본당)씨는 묵주 닥터스 교육을 계기로 세례를 받았다.



한 알 한 알 소중한 묵주, 아프리카까지

묵주 닥터스 인원이 늘자 권 원장은 고치는 것을 넘어 묵주를 접하기 어려운 나라에 선물하기로 했다. 그래서 묵주 닥터스 인턴에게 해외에 기부할 묵주를 만드는 것을 마지막 숙제로 내줬다. 지난해 1년 동안 묵주 1080개를 모아 남수단 톤즈를 비롯해 대만·동티모르·몽골·러시아·말라위에 전달했다. 올해는 벌써 2000개를 제작, 그중 1300개를 대만 등에 보냈다. 외국 신자들이 묵주를 받아들고 환히 웃는 사진을 보여준 권 원장은 “주는 것보다 받는 사랑이 더 커서 행복하다”고 미소 지었다.

권 원장의 꿈은 전국 모든 교구마다 묵주병원이 한곳 이상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신자들이 소중한 신앙 유산인 묵주를 버리지 않고 오래도록 지켜나가는 게 그의 바람이다.

아울러 현재 활동 중인 묵주 닥터스는 30여 명. 권 원장은 또 “묵주 닥터스가 저마다 자긍심을 가지고 활동을 이어나가면 좋겠다”며 “그렇게 되게 하려고 저도 힘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묵주 닥터스 인턴과정은 상시 모집 중이다. 더운 여름을 맞아 묵주 만들기에 빠져보면 어떨까. 문의 : 010-4224-7408, 예쁜기도

이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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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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