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서울 은평구 수색감리교회 1층 찬양대실. 피아노 선율 위로 장구 장단이 얹혔다. 퇴근 후 모인 수도권 어린이집 원장 20여 명이 내는 리듬이다. 이들은 악보를 챙기며 서로의 안부를 묻느라 분주했다. 온종일 아이들을 돌보고 행정 업무를 처리하고 온 이들이지만, 연습실에서만큼은 원장이 아닌 ‘합창단원’이었다.
“노래를 부르다 눈물을 흘리는 원장님도 있었어요.” ‘세잎클로버합창단’을 이끄는 권구철(요셉, 서울대교구 강일동본당) 단장의 말이다.
네잎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다. 하지만 연습실에 모인 원장들은 행운보다는 행복을 이야기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행운을 기다리기보다 지금 곁에 있는 행복을 찾자는 뜻에서 꽃말이 ‘행복’인 세잎클로버를 합창단 이름으로 정했다.
“우스갯소리로 다른 사람에게 저를 ‘연예인’이라고 소개해요. 기쁘나 슬프나 항상 웃어야만 하니까요. 그러나 이곳에서 노래 부를 때만큼은 거짓이 아닌 진심으로 웃을 수 있어요.” 창단 때부터 합창단원으로 함께하고 있는 김금진 원장은 경기 고양시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전국 최초의 어린이집 원장 합창단인 ‘세잎클로버합창단’은 2023년 8월 창단됐다. 아이들을 위한 교재와 교육 콘텐츠를 보급하며 원장들의 고충을 가까이서 지켜본 권 단장이 “원장들에게도 숨 쉴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시작했다. 이후 수색감리교회 권사인 김 원장이 찬양대 지휘자와 반주자를 소개하면서 합창단원들은 이곳에서 꾸준히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평소엔 2주에 한 번, 공연을 앞두고는 매주 모인다.
이날 연습한 곡들은 ‘에델바이스’부터 ‘Dona Nobis Pacem’(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 ‘밀양아리랑’, ‘나는 반딧불’ 등이었다. 연습이 시작되자 합창단원들은 안경을 고쳐 쓰기도 하고, 서로의 어깨를 주물러 주며 하루간 쌓인 긴장을 풀었다. 외국어로 된 곡을 연습할 때는 지휘자로부터 엄격한(?) 발음 교정도 받았다. 전문 음악인은 아니기에 어색해 하거나 서툴러 하기도 했지만, 입가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이날 합창단원들은 이틀 후 의정부교구 동두천성당의 이주민을 위한 미사에서 열릴 나눔 음악회를 앞두고 있었다. 이들은 그간 갈고닦은 실력을 선보이며 이주민에게 전달할 간식세트 120개와 그 자녀들을 위한 선물 30개도 준비했다. 성탄 대축일에는 교회 인근 아동재활병원을 찾아 환아와 가족들을 위한 공연을 이어오고 있다. 정기연주회를 열어 모금한 400여만 원을 기부하는 등 어린이집 원장 합창단원들의 사랑은 음악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고양시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정현남 원장은 “다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니 서로의 고충에도 진심으로 공감하고, 조언도 해줄 수 있다”며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과 행복을 주기에 연습을 마치고 나면 발걸음이 항상 가볍다”고 활짝 웃었다.
지휘자 임은택씨는 “음악은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위로와 선물이라 생각한다”며 “세잎클로버합창단의 3이라는 숫자가 완전함을 나타내는 만큼 불안한 세상이지만 주님이 주신 선물을 바탕으로 서로에게 위안이 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권 단장은 “어린이집 원장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며 “늘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는 원장님들이 이곳에서 위로와 보람을 얻고, 그 마음이 다시 아이들에게 전해지는 선순환을 이루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