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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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성장의 밭에 씨뿌리는 주님 일꾼으로!

[평화인] 한승수(다니엘) 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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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색 성장과 관련된 문제에 전념하고 있는 한승수 전 국무총리는 젊은이들이 한국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세계를 무대로 활동해주기를 기대했다. 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
 


유엔(UN) 사무총장 물과 위생 자문위원, 유엔 물과 재해 고위급 전문가회의 의장, 영국 스탠다드차터드 그룹 독립 비상근이사, 미국 맨스필드재단 이사,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 이사회 의장….

 한승수(다니엘, 74) 전 국무총리가 현재 맡고 있는 직책들이다. 8월 초에는 `유엔 기후변화와 개발을 위한 고위급 자문기구 위원`이라는 직함을 하나 더 보탰다. 8월 24일 서울 적선동 정부중앙청사 뒤에 있는 개인 사무실에서 만난 한 전 총리는 여전히 건강하고 활기에 넘쳤다.

녹색 성장 전도사

 한 전 총리는 8월 29일 동북아 6개 국 지도자 회의(중국 심양)에서 연설을 한 뒤 미국 뉴욕으로 날아가 이달 19일에는 유엔 기후변화와 개발을 위한 고위급 자문기구 회의에 참석하고, 20일에는 새천년개발목표(MDG) 정상회의에서 녹색 성장에 관한 기조 연설을 할 예정이다. 그의 책상에는 세계은행에서 검토를 요청하며 보내온 녹생 성장 관련 보고서가 놓여 있었다. 엄청나게 두꺼웠다. 한가할 틈 없이 하루하루를 바쁘게 사는 것이 건강 비결인 듯 싶었다.

 그의 직함에 물, 기후, 녹색 등 환경문제와 관련된 용어가 유난히 많다. 까닭이 궁금했다.

 "2001년 유엔 총회 의장을 맡으면서 국가 차원이 아닌 인류 전체가 당면한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급속한 경제 발전은 막대한 탄소를 배출하면서 지구 온난화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기후 변화에 따른 생태계 파괴보다 더 큰 문제는 없다고 봅니다. 경제 성장과 환경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녹색 성장`이 중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한 전 총리가 의장으로 있는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는 저탄소 녹색 성장에 대한 이론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키고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 전 세계에 확산시키겠다는 취지 아래 지난 6월 정부 주도로 설립된 국제 연구소다. 세계 각국 최고 권위자들이 참여하며, 2012년까지 국제기구로 승격시키겠다는 정부 구상대로라면 우리나라에 본부를 둔 첫 번째 국제기구가 된다.

 녹색 성장 전도사인 그가 4대 강 사업을 추진하는 현 정부에서 초대 총리를 지냈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다가왔다. 녹색 성장과, 일각에서 생명ㆍ환경 파괴 주범이라 비판하는 4대 강 사업은 서로 모순되는 것은 아닌지….

 "6ㆍ25전쟁에 참전했던 외국 군인들이 몇십 년 만에 한국을 찾아 가장 놀라는 것 가운데 하나가 산들이 온통 푸르게 바뀌었다는 사실입니다. 몇십 년 동안 추진해온 산림녹화 사업의 결실이죠. 제가 어릴 때 뛰어놀던 하천이 지금은 너무 더러워져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4대 강 사업은 죽은 강을 살리자는 것이지, 살아 있는 강을 죽이자는 게 아닙니다."

 한 전 총리는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산과 강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4대 강 사업"이라면서 이 사업의 목적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녹색 성장과 4대 강 사업은 적대적이지 않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정계 요직 두루 거쳐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난 한 전 총리는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를 거쳐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상공부장관, 주미 한국대사, 대통령 비서실장, 부총리 겸 재경원 장관, 외교통상부 장관, 유엔총회 의장, 국무총리 등을 지내면서 다양한 국정경험을 쌓았다. 한 전 총리처럼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이도 없다. 온화한 성격이나 일에는 철저한 외유내강형이라는 평이다.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을까. 한 전 총리는 "개인적으로는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고, 손자 손녀를 얻었을 때가 가장 기뻤다"고 대답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자들 얼굴이 떠올랐는지, 한 전 총리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 올랐다. 남편으로, 아버지로, 할아버지로서 행복하기는 여느 가장과 다르지 않았다.

 "공인으로서는 2001년부터 1년간 유엔총회 의장으로 활동하면서 유엔이 처한 위기를 극복하는 데 힘을 보태고, 유엔 대표로 200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것이 가장 값진 순간으로 기억됩니다. 힘들었던 시기는 총리로 재직하던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때였습니다. 사실과 다른 것이 확대재생산되면서 정치적으로 악용될 때 무척 마음이 아팠습니다."


삶과 신앙은 일심동체

 명동본당에 교적을 두고 있는 한 전 총리는 총리 재직 중에도 매 주일 명동성당 아침 7시 미사에 빠지지 않고 참례해 하느님께서 이 나라를 보살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촛불시위대 때문에 신변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경호원의 만류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 전 총리에게 신앙은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그는 "최선을 다해 인간을 섬기는 것이 곧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신앙과 삶은 둘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한 전 총리는 1980년 서울 압구정동성당에서 당시 주임 박신언(현 학교법인 가톨릭학원 교구장 대리) 몬시뇰에게 세례를 받았다. 1남 1녀 자녀와 함께였다. 부인 홍소자(레지나)씨는 어려서부터 성당을 다녔다.

 이후 손자 손녀는 물론 미신자였던 며느리, 사위 모두 박 몬시뇰 세례를 통해 하느님 자녀가 됐다. 한 전 총리에게 영적 후견인이나 다름 없는 박 몬시뇰에게 깊은 감사와 존경의 뜻을 전했다.

 "박신언 몬시뇰님 기도 덕에 가족 모두가 평화롭게 삽니다. 신앙적으로는 물론 교구 관리국장으로 계실 때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두 차례 방한하셨을 때 몬시뇰께서 발휘하신 탁월한 업무 능력을 볼 때 가톨릭학원 교구장 대리직도 잘 수행하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한 전 총리는 박 몬시뇰과 인연으로 고 김수환 추기경이 북방선교 사제 양성을 위해 설립한 옹기장학회 회장을 7년간 지냈다. 한 전 총리는 총리 재직 시절 병원에 입원 중인 김 추기경을 자주 찾았고, 선종 후에는 경북 군위에 있는 김 추기경 생가를 방문한 적이 있다. 초라한 생가 근처에 옹기터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남다른 상념에 잠기기도 했다.
 
일기쓰는 전 총리

 등산을 동반자 삼아 살아온 한 전 총리의 건강은 예전부터 유명했다. 환갑 때인 경제 부총리 시절에는 관악산 인근 서울대 입구에서 내려 관악산을 넘어 과천청사로 출근했고, 싱가포르를 방문했을 때는 당시 우리 건설사가 짓고 있던 452m 높이의 세계 최고층 빌딩을 걸어 올라가 동행자들 입을 벌어지게 만들었다. 요즘은 매일 집에서 런닝머신을 타고 4㎞ 속보로 걷는 것으로 건강을 다진다



가톨릭평화신문  201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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