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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천주교는 `종교적 복음`이었을 뿐 아니라 `사회적 복음`(Social Gospel)이었기에 급속히 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한국 민족사학계의 대표적 석학인 조광(이냐시오, 65) 고려대 교수. `조선 근대사`가 전공이면서도 평신도로는 드물게 한국천주교회사 연구에 매진, 40여 편에 달하는 천주교회사 관련 논문을 집필한 조 교수가 8월 31일 고려대를 정년퇴임하면서 한꺼번에 8권에 이르는 역저를 펴내고,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그가 펴낸 저서는 「조선 후기 사상계의 전환기적 특성」과 「한국사학사의 과제와 전망」 등 저서 6권과 손승철 강원대 사학과 교수와 공편인 「한일 역사의 쟁점」(상ㆍ하, 이상 경인문화사 펴냄) 등 모두 8권이다.
이 가운데 한국천주교회사 관련 저서도 논문집 「조선 후기 사회와 천주교」를 비롯해 「조선 후기 천주교사 연구의 기초」, 「한국 근현대 천주교사 연구」 등 3권이나 포함됐다. 퇴임하자마자 서울 종암경찰서 옆 빌딩에 `한국사연구실`을 낸 조 명예교수를 만났다.
고려대 석사학위 논문 `조선후기 사회사상 연구`를 시작으로 38년 동안 110여 편의 논문을 쓴 조 교수는 "그동안엔 공부가 의무였는데 이젠 선택이 돼 아주 즐겁다"고 퇴임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내년쯤 조선 후기 사회와 사상 관련 저서를 3권이나 더 내야 하고, 개화기 의금부 강상범(국사범) 신문 기록도 번역해야 하고, 조선 후기 공동 연구 프로젝트도 진행해야 하기에 쉬엄쉬엄 즐겁게 공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
조 교수는 원래 가톨릭대 신학과에 다니던 신학도였다. 소신학교(성신고)를 거쳐 대신학교 4년을 마친 조 교수에게 학교에서 교회사 공부를 권해 1969년 고려대 사학과에 편입학했다.
"대신학교 재학 때 교회사연구회라는 동아리를 만들어 회장도 했고, 교회사 연구지를 내기도 했어요. 고려대에 편입했다가 졸업장이 있으니까 대학원에 갈 수 있다고 해서 1년 만에 대학원에 들어갔어요. 그 뒤로 조선 후기사 연구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사제가 되려다가 사학자로 변신한 조 교수는 특히 `사랑에 빚진 자`처럼 교회사 연구에 매달렸다. 빛도 나지 않고 누가 알아 주지도 않고 평가도 받지 못하는 연구였지만 혼자 좋아서 하는 일이어서 별로 외롭지 않았다고 했다.
이번에 낸 「조선 후기 사회와 천주교」는 조선에 들어온 천주교가 사회에 미친 영향을 집중 분석했다. 또 「조선 후기 천주교사 연구의 기초」는 「사학징의」나 「동국교우상교황서」, 「승정원일기」, 「일성록」 같은 원사료에 대한 비판을 다룬 12편 논문을 담았고, 「한국 근현대 천주교사 연구」는 개항 이후 천주교 신자들 독립운동과 안중근(토마스) 및 유족 관련 논문, 20세기 현대 천주교회사 등을 시기별로 모두 다뤘다. 이전(1988년)에 나온 그의 저서 「조선 후기 천주교사 연구」를 잇는 성과작이다.
조 교수는 역시 `학자답다`는 생각이 들 만큼 기존 주장에 대해서도 정확한 사료를 들어 비판한다. 일례로 1886년 한불조약으로 교회가 신앙의 자유를 얻은 것으로 보고 있지만, 조약 조문엔 선교사들이 교회(敎誨)할 수 있는 자유, 곧 선교를 할 수 있도록 했지만 정부가 신앙의 자유를 허용한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한불조약으로 선교가 묵인되던 중 고종이 1895년 조선대목구장 뮈텔주교를 만나 교유를 통해 공인함으로써 신앙의 자유가 확보된 것으로 본다. 그래서 뮈텔 주교가 당시 고종을 알현한 뒤 돌아와 "오늘로 조선에서 박해가 끝났다"고 일기에서 쓰고 있다고 조 교수는 밝혔다.
이 4권의 역저를 통해 한국천주교회사를 아우른 조 교수는 "이제 한국천주교회는 나름대로 자리를 잡았지만 자신감이 넘쳐 자족감이 넘치는 교회가 됐다"면서 "앞으로 복음을 제대로 전해나가는데 이 자족감은 상당히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교회도 언제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필요하다"며 "발전을 꼭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지만 발전에도 그늘이 있다는 점만 교회가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이제 연구와 더불어 역사 제자리 찾기에 전념할 작정이다. 현 제9차 교육과정에서 고교 역사교육을 선택과목으로 지정함으로써 고교시절 단 한 번도 역사수업을 받지 않고 학교를 마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고교 과정에 `역사` 과목만 있을 뿐 `한국사`라는 과목은 완전히 사라졌다"며 "가치판단의 학문인 문사철(文史哲)이 사라진 교육은 안된다"고 강조하며 역사 방어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분명히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