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7개 언덕 중에서도 가장 숲이 많고 아름다운 첼리오 언덕 위에 성 스테파노 대성전(Basilica S. Stephani in Caelio Monte)이 서 있다. 단 하나 남아 있는 초기 그리스도교 원형 성당이다. 흔히 산토 스테파노 로톤도(Santo Stefano Rotondo)라고 부르는 대성전으로, 역사상 첫 순교자 성 스테파노에게 바쳐졌다.
2세기 때에는 대규모 군대 막사였던 카스트라 페레그리노룸(Castra Peregrinorum)이 이 성당 가까이에 있었다. 그런 탓에 성당 밑에서는 막사의 건물과 함께 그 일부를 고대 미트레움(Mithraeum)으로 바꾼 방이 발굴되었다. 크기는 10m×4.5m인데, 당시 군인들 사이에서 매우 인기 있는 미트라스(Mithras) 신을 섬기던 성소였다. 이는 그리스도교 건물은 이교도 신전 위에 지어진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이 성당은 로마 제국의 사원이 그리스도교 성당으로 변형된 최초의 사례 중 하나다.
그러면 어떻게 이 땅에 산토 스테파노 로톤도 성당이 세워지게 되었을까? 그것은 당시 첼리오 언덕의 상당한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던 발레리안(Valerian) 가문이 성당 건립의 자금을 조달했으리라 추측하고 있다. 이 가문에 속했던 성녀 멜라니아가 예루살렘을 자주 순례하다가 383년 그곳에서 사망했는데, 이로써 이 가문이 예루살렘 성지와도 연결되어 있었다고 보고 있다.
순교자 성 스테파노의 무덤은 415년에 예루살렘에서 15㎞ 떨어진 카프르 가말라(Kafr Gamala)에서 발견됐다. 이 유해는 예루살렘의 시온 성당과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거쳐 로마로 나누어져 전해졌다. 이때 각 도시에 보관된 유해 위에 성 스테파노 기념 성당이 건축되었는데, 그 하나가 이 건물이었다. 이로써 이 성당은 교회의 첫 순교자인 성 스테파노의 유해를 보관하기 위해 성 심플리치오(468~483) 교황 시대 또는 460년에 봉헌되었다. 그렇지만 이 성당이 원형 건물인 것은 처음부터 성당이 아닌 성 스테파노에게 순교자 묘소였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로마에서 세워진 최초의 원형 성당
많은 이는 산토 스테파노 로톤도가 로마에서 세워진 최초의 원형 성당이라 여기고 있다. 로마 제국의 영묘(靈廟)가 성당 형태의 원천이었겠지만, 로툰다에 십자 형태를 겹친 것을 보면 예루살렘 주님 무덤 성당의 ‘아나스타시스’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론한다. 지름은 주님 무덤 성당과 거의 같다. 다만 이에 영향을 받은 성당은 페루지아의 산 미켈레 아르칸젤로 성당(Church of San Michele Arcangelo, Perugia) 하나가 있을 뿐이다. 여러 차례 고쳐졌고 증개축의 확실한 과정도 알 수 없어서, 처음 성당으로 지어졌을 때의 모습은 정확히 알 수 없고 그 사용 목적도 분명하지 않다. 그렇지만 오늘날까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의 다른 건물과 마찬가지로 외벽은 벽돌이어서 소박하다. 그러나 좁은 길에서 바라보면 입구는 좁고 긴 작은 포르티코가 붙어 있어서 성당의 모습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다. 이 포르티코는 12세기 인노첸시오 2세 교황 때 증축되었다.
그러나 내부에는 비교할 수 없이 간소하고 숭고한 공간이 숨어 있다. 건물은 3개의 원형으로 된 벽으로 감싸여 있다. 안쪽에는 지름이 약 23m의 원형 중랑(中廊)이 있고, 10m 폭의 주보랑이 그 주위를 두르고 있다. 지금은 인식이 잘 안 되지만 그 바깥으로 10m 폭의 공간이 더 있다. 이처럼 전체 원형의 지름은 64m로 현존하는 원형 성당중 가장 크다. 지름이 55m인 판테온보다 9m 더 길다. 그러나 르네상스 때 알베르티의 개조안에 기초하여 가장 바깥쪽 공간을 없애 버려 지금 두 번째 열은 외벽으로 바뀌었는데, 그 벽에는 순교를 그린 많은 프레스코화가 있다.
원형 중랑에는 12개의 이오니아식 원기둥이 원을 그리고 있다. 따뜻한 회색의 대리석 원기둥 위로는 수평의 엔태블러처가 놓여 있으며, 그 위로 순백의 회반죽으로 마감된 원통 벽이 놓여있다. 원통 벽에는 12개의 창을 통해 빛이 비쳐 들어와 원기둥으로 둘러싼 높이 22m의 중심 공간을 환히 비춘다. 그 중앙에는 팔각형 제단과 제대가 놓여 있고, 위로는 커다란 횡단 아치 세 개가 원을 양분하며 걸쳐 있다. 제대 바로 위의 횡단 아치는 두 개의 거대한 코린트식 원기둥이, 그 좌우에는 각기둥이 받치고 있다. 구조를 보강하기 위해 8세기에 덧붙여진 것이다. 또 다른 아치와 겹쳐 보강한 것인데도 오히려 중심 공간에 극적인 힘을 나타내고 있다. 이 중심 공간은 조적 구조의 돔이 아니라 원뿔형의 목조 지붕이 덮여 있다. 이 공간을 두르고 있는 12개의 열주로는 돔의 중량을 지탱하기가 어려웠으므로 처음부터 지붕을 목조로 만들었다. 그런데도 목조 지붕 구조는 흰 벽과 훌륭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중심 공간을 두고 있는 원기둥은 자세히 보면 형태가 제각기 조금씩 다르다. 원기둥 위의 인방도 다른 건물에 있던 것을 다시 사용한 탓에 높이가 다르다. 고대 로마의 다른 건물에 있던 것을 다시 사용했거나, 이미 있었던 원형 건물을 부분적으로 철거하고 재구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이오니아식 기둥머리는 5세기에 이 성당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졌다.
산타 코스탄차의 정신 그대로 이어받아
그러면 산토 스테파노 로톤도 성당이 지어졌을 때 그 본래의 모습이 어떠했을까? 그 모습을 가상 공간으로 재현한 자료가 있다. 본래의 건물에서는 중심에 있는 원통 옆에 그리스 십자가처럼 네 개의 방이 높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높은 방과 방 사이는 긴 옥외 통로와 지붕이 덮인 긴 방으로 나뉘어 있었다. 바깥벽에는 문이 2개씩 네 쌍 모두 8개 있었다. 사방이 똑같이 되어 있어서 어떤 입구로 들어가도 똑같이 생긴 통로로 그리스 십자가의 팔에 해당하는 방으로 이어졌다. 이 팔에 해당하는 방은 지붕으로 덮여 있지만, 좌우와 안쪽 등 세 방향으로 열려 있어서 ‘아트리오(atrio, 중정)’라 부른다.
이 ‘아트리오’의 바로 앞에는 다섯 개의 아치가 서 있고, 이를 지나면 주보랑과 중랑에 이른다. 주보랑은 아치를 이룬 36개의 원기둥과 8개의 벽기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안에서는 밝은 네 개의 ‘아트리오’와 벽에 막혀 약간 어두운 사이의 방이 교차하며 나타난다. 지금은 모두 사라져 버렸지만, 내부의 바닥과 벽은 요한 1세 교황(523-526)과 펠릭스 4세 교황(526-530)에 의해 치폴리노 대리석 판으로 화려하게 장식했었고, 중랑의 원통 벽면에도 대리석 명판(名板)이 붙어 있었다. 게다가 ‘아트리오’ 바닥에는 녹색의 대리석이, 그 앞의 바닥은 붉은색 계통의 대리석을 깔아 전체 원형 공간을 십자로 분절했다.
산 미켈레 아르칸젤로 성당을 제외하고는 그 이후 원형의 성당은 전혀 지어지지 않고 바실리카 식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런데도 세 겹의 동심원 공간을 탁월하게 구성한 이 원형의 산토 스테파노 로톤도는 성당은 산타 코스탄차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은 듯 아름답다. 그리고 중심형 성당 공간의 이상적인 본질이 어떤 것인지 묻게 만드는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