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 교수의 성당 건축 이야기] 26. 클라세의 산타 폴리나레 대성전
클라세의 산타 폴리나레 대성전 내부. 출처=Steven Zucker
라벤나에서 북쪽으로 5㎞ 떨어진 곳에 클라세(Classe)가 있다. 지금은 전원으로 둘러싸인 조용한 작은 마을이지만, 예전에는 아드리아해 연안에 있는 라벤나의 항구로서 번영을 누렸다. 지명은 라틴어로 ‘클라시스(함대)’에서 유래했다. 이는 그곳에 로마 제국의 제2함대가 주둔했던 항구 시비타스 클라시스(Civitas Classis)가 있었기 때문이다.
성 아폴리나리스의 무덤 위에 세워진 성당
비잔티움의 라벤나가 가장 번성하던 시기에 가장 웅장하게 지어진 건물이 클라세에 있다. ‘클라세의 산타 폴리나레 대성전(Basilica di Sant‘Apollinare in Classe)’이다. 535년에 시작하여 538년에 세워졌고 549년에 봉헌되었다. 다음 회에서 다룰 산 비탈레 대성전(Basilica di San Vitale)이 봉헌된 지 1년 후다. 전설에 따르면, 1세기 말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에서 온 성 아폴리나리스(Apollinaris)가 라벤나 최초의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설립하고 첫 주교가 되었으나, 74년에 순교하여 성벽 밖 묘지에 묻혔다. 536년 라벤나 대주교 우르시치누스(Ursicinus)는 은행가 줄리아노 아르젠타리오(Giuliano Argentario)의 기부금으로 성 아폴리나리스의 무덤 위에 아름다운 성당을 세웠는데, 그것이 ‘클라세의 산타 폴리나레 대성전’이다.
외벽은 긴 벽돌로 단순하게 지어졌다. 정면에서 보면 박공지붕 아래로 전면 포치가 있는데, 좌우로 아치창 세 개가 연속해 있다. 원래는 네 면이 포치인 아트리움이 있었는데, 그중 일부가 1870년에 발견되어 근년에 복원되었다. 북쪽에는 높이 38m의 원형 종탑이 성당에서 약간 떨어져 서 있다. 정면에서는 왼쪽으로 멀리 보인다. 10~11세기 로마네스크의 것이다. 탑의 개구부는 위로 올라가면서 단일 창, 이중 란셋 창, 삼중 란셋 창 등을 뚫어 하중을 줄였다.
이 대성전은 3랑식 바실리카식 성당이다. 내부는 산타 폴리나레 누오보 대성전의 디자인을 이어받아 공간이 간결하고 힘이 있다. 폭은 약 30m, 깊이는 악 55m로 ‘누오보’보다 넓다. 측랑이 낮고 좁은 대신 중랑이 넓고, 중랑과 측랑이 널찍한 아치로 통해 있다. 또한 측랑 쪽 벽과 중랑 벽 위에 창을 많이 두어 내부는 빛으로 가득 차 있다.
반원 제단을 향해 좌우로 각각 12개씩 세련된 그리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원기둥이 늘어서 있다. 유난히 큰 원기둥의 기둥머리는 독특하게도 이오니아식과 코린트식을 섞은 것처럼 보인다. 대리석 원기둥은 높은 정사각형 받침대(pedestal)에 놓여 더 높고 날씬하게 보이는 데다가, 결이 모두 자연스럽게 달라서 그 위에 얹은 아치는 리듬에 따라 물결치는 것 같다.
반원 아치는 부주두 위에 놓여 있다. 다만 ‘누오보’처럼 아치를 잘라서 올리지는 않았다. 그런 아치 위에는 두 층을 이룬 벽면이 수평으로 펼쳐진다. 아래층에는 원형의 메달리언(medallion)이 계속 이어져 있고, 그 안에는 18세기 프레스코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위층에는 벽돌 벽에 고창이 있다. 지금은 모자이크가 벗겨져 있지만, 지어졌을 때는 벽은 대리석으로, 바닥은 모자이크로 덮여 있었으며 천장은 격자천장이었다. 이처럼 원래 내부는 지금보다 훨씬 더 풍부했다.
클라세의 산타 폴리나레 대성전 내부. 출처=Steven Zucker
제단 중심에 걸린 황금 십자가 두드러져
산타 폴리나레 누오보 대성전은 좌우 벽면이 뛰어난 모자이크가 장식되어 있지만, 반원 제단의 모자이크는 없어져 버렸다. 그러나 클라세의 산타 폴리나레 대성전은 벽면의 모자이크는 없어진 대신 반원 제단의 모자이크가 대단히 훌륭하다. 이런 점에서 ‘누오보’ 와 ‘클라세’는 서로 보완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클라세의 산타 폴리나레 대성전에는 반원 제단 위를 덮는 반(半) 돔과 그 앞을 한정하는 개선문 아치 벽을 6세기에서 11세기에 이르는 여러 시대에 만들어진 훌륭한 모자이크가 장식하고 있다. 그런데 반원 제단 위의 화려한 모자이크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그것은 6세기 그리스도의 신성을 반복해서 표현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신성을 거부한 아리우스파가 맞서 싸워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굳건히 세우고자 한 것이다.
반원 제단에서 가장 눈에 두드러지는 것은 중심에 걸린 황금 십자가다. 십자로 교차하는 곳에는 그리스도의 형상이 새겨진 메달이 있고, 가로목의 좌우에는 알파와 오메가라고 쓰여 있다. 이 십자가는 황금색 별이 박혀 있는 파란 하늘을 뒤로하고 우리를 향해 떠오르고 있다. 반짝이는 별은 99개다. 잃어버린 양에 대한 비유처럼 한 개는 잃어버린 양인 우리이고, 아흔아홉 개는 선한 천사들이다. 그리스도교 예술에서 보통 별은 천사를 상징하는데, 십자가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별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함께할 천사들의 무리를 나타낸다.
푸른 하늘은 보석이 박힌 왕관으로 에워싸여 있다. 이 왕관 주위를 감싸는 황금빛 하늘에는 “MOYSES”와 “HbELYAS”라고 쓰여 있는 두 인물이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다. 모세와 엘리야다. 십자가 아래의 좌우에는 양 세 마리가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영광스러운 변모를 목격하도록 ‘높은 산’으로 데려가신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나타낸다. 황금빛 하늘에는 떠오는 햇빛을 받은 구름이 떠 있다. 세 제자를 덮고 있던 “빛나는 구름”이다. 십자가 바로 위에는 손이 그려져 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태 17,5)라고 말씀하신 아버지의 음성을 가리킨다.
반원 제단 오른쪽 모자이크 상세, 클라세의 산타 폴리나레 대성전. 출처=Orthodox Arts Journal
반원 제단 모자이크는 무엇을 말하는가?
한편 이 반 돔 위에는 개선문 아치 벽이 있다. 위에는 7세기에 그려진 그리스도 판토크라토와 네 복음사가 있고, 그 밑에는 예루살렘(오른쪽)과 베들레헴(왼쪽)을 나온 좌우 여섯 마리의 양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나타낸다. 개선문 기둥에는 대천사 미카엘과 가브리엘이 악의 세력으로부터 세상과 교회를 보호하고 있다. 반원 제단 창 사이에는 에클레시우스, 세베루스, 우르수스, 우르시치누스 등 네 명의 주교 성인이 손에 책을 들고 있다. 그 오른쪽 끝에는 아벨, 멜키체덱,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희생 제사를 바치고 있고, 왼쪽 끝에는 7세기쯤에 그려진 ‘콘스탄틴 황제의 선물’이 있다. 둘 다 산 비탈레 대성전의 사례를 따르고자 한 것이다.
이 모든 이미지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변모를 그린 것이다. 오래전부터 정원을 ‘파라디소(paradiso)’라 했고, 이 말에서 ‘파라다이스(paradise, 낙원)’가 나왔다고 한다. 성경의 “높은 산”은 황금빛 하늘 아래에 푸른 잎이 무성한 정원으로 바뀌어 있다. 따라서 정원이 곧 낙원이다. 정원(동산)은 성령께서 변화시키는 전체 창조물의 소우주인데, 그 안에는 양 열두 마리가 상징하는 모든 신자가 있다.
그런데 후광을 입은 성 아폴리나리스가 한가운데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이처럼 거룩한 전례는 우주적 배경에서 거행되는 것, 그 안에서 주님의 변모와 재림이 이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대성전의 반원 제단 모자이크는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변모는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모할 수 있게 이끄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