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 교수의 성당 건축 이야기] 27. 산 비탈레 대성전 <상>
산 비탈레 대성전 아케이드와 빛. 출처=Wikimedia Commons
비잔티움 건축의 정점인 건물
산 비탈레 대성전(Basilica of San Vitale)은 클라세의 산타 폴리나레 대성전과 마찬가지로 은행가 줄리아노 아르젠타리오(Giuliano Argentario)의 기부금으로 라벤나의 수호성인인 초기 순교자 성 비탈리스의 기념성당으로 지어졌다.
비잔티움(로마) 제국은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비잔티움으로 옮기면서 시작되었다. 이런 새로운 비잔티움 문화의 정수가 라벤나에 직접 흘러들어온 것은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이탈리아의 동고트족을 무찔러 게르만족 수중에 들어갔던 이탈리아를 되찾으면서부터였다. 산 비탈레와 산타 폴리나레 인 클라세 대성전은 이러한 시대에 지어졌다.
산 비탈레 성당이 세워졌을 때 라벤나는 비잔티움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따라서 산 비탈레 대성전은 라벤나의 다른 성당들과 달리 비잔티움 건축의 정점인 건물이었다. 또한 산 비탈레 대성전은 유스티아누스 황제 때 지어진 성당으로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성당이기도 하니, 이 대성전은 대단히 중요한 성당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정점에 서면 그 이후는 쇠퇴하기 시작한다고 볼 때 이 성당의 소중함은 더해진다.
이 대성전은 라벤나가 번영하던 시대의 정점에서 핀 화려한 꽃과 같은 건물이다. 돔, 입구의 형태, 단을 이룬 탑 등은 고대 로마적 요소이고, 다각형의 반원 제단, 주두, 좁고 긴 벽돌은 비잔티움의 요소다. 그러니 이 성당을 꽃으로 말하자면, 이 성당은 고대 건축의 끝인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와 중세의 시작인 비잔티움이라는 두 시대의 빛을 받고 자란 꽃이다. 그리고 서방 세계인 이탈리아와 동방 세계인 콘스탄티노폴리스라는 두 문화적 토양에서 양분을 받고 자란 꽃이다.
밖에서 보면 이 성당은 마치 갈색의 벽돌로 쌓아 올린 산과 같다. 한가운데에서 솟아오르는 8각형의 덩어리를 향해서 제각기 선명하게 베어낸 듯한 다양한 모습의 벽돌 덩어리가 규칙적이고 각을 지으며 겹쳐 있다. 본래는 성당은 독립해 있었고, 북서쪽의 한 변에 입구를 두어 동남쪽의 제단과 같은 축에 두었다. 그러다가 이 축의 방향을 틀어 서쪽으로 정사각형의 아트리움을 두었는데, 지금은 세 변에 있던 열주랑은 없어지고 8각형 평면에 비스듬히 붙어 있는 긴 문랑만 남게 되었다. 긴 문랑을 지나면 삼각형 문랑이 또 나타나는데, 이곳에는 2층 갤러리로 올라가는 원형 계단이 붙어 있다.
산 비탈레 대성전 중랑과 제단. 출처=Wikimedia Commons
직선적 외부와 달리 내부는 곡선이 지배
외부와는 달리 내부는 곡선이 지배한다. 8각형 평면 가운데에서 선 8개의 당당한 기둥이 돔을 받치고 있다. 지름 9m, 높이 28.7m인 돔의 천장에는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는데 16세기 것이다. 성당 하부의 기둥과 아치는 결을 모두 좌우 대칭으로 맞춘 유색 대리석을 입혀서 마치 기둥에 꽃이 핀 것처럼 보인다. 기둥도 비잔티움 양식이다. 주두는 레이스를 짠 듯이 모양을 도림질 했고, 그런 주두 위에는 부주두를 더 놓았다. 기둥 사이마다 반원형 곡면 벽(엑세드라, exedra)이 주보랑 쪽으로 내밀고 있다. 이 곡면은 세 개의 아치로 된 아케이드가 두 층을 이룬다. 한편 주보랑과 갤러리는 모두 볼트로 덮여있다. 12세기에 목재 천장을 고친 것이다.
그러나 짓기 시작한 것은 526년 동고트 왕국의 황제 테오도릭이 죽은 지 1년 후인 527년부터인데, 이는 540년 고트족에게서 도시가 탈환되기 훨씬 전이다. 이렇게 지어진 사정이 복잡한 것은 산 비탈레 대성전은 삼위일체의 하느님을 명확하게 말하는 성당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4세기 아리우스파는 성부만이 본질에서 시작이 없이 영원하며, 성자는 모든 피조물처럼 창조되어 태어났을 뿐이라고 주장하며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했다. 이에 교회는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아리우스파를 단죄하고 니케아 신경으로 삼위일체의 신앙을 반포했다. 이어서 381년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에서는 이를 확대하여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을 선포했다.
그런데도 아리우스파는 동고트 왕국을 세우고 이탈리아를 지배하며 수도 라벤나에 그들의 중요한 성당들을 지었다. 그러나 동고트 왕국이 약해지자 동고트 왕국의 황제 테오도릭이 죽기 1년 전인 525년에 건축으로 삼위일체의 하느님을 명확히 하기 위해 성당을 짓기 시작했고, 548년에 비로소 완공되었다. 그것이 바로 산 비탈레 성당이다.
산 비탈레 대성전 평면. 출처=Wikimedia Commons
‘3’이라는 모티프 반복하고 ‘3’은 하나로 묶여
평면을 보면 외곽에는 주보랑(周步廊)이, 그 안으로는 7개의 반원의 아케이드로 이행하는 구역으로, 다시 그 안 중심에는 8각형의 공간이 중심을 같이하며 한 몸을 이루고 있다. 단면에서도 위아래가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안에서 보면 돔 지붕의 아래에 두 층으로 된 아케이드가 서 있어서 전체는 돔, 두 층의 아케이드 등 세 개의 층으로 나뉜다. 또 각 층에서 반원을 이루는 아케이드는 세 개의 아치로 다시 나뉜다. 그러나 이 작은 세 개의 아치와 아케이드는 돔의 받치고 있는 더 큰 아치 안에서 하나로 결합한다. 그런데도 기둥, 벽, 두 층의 아치, 돔은 이음매 없이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다. 또 이 요소들을 모두 하나가 되어 큰 아치의 볼트 아래까지 높이 올라간다. 그 결과 이 반원의 아케이드는 굽이치는 물결과 같은 중랑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
빛도 마찬가지다. 돔에는 중랑에 직접 빛을 비추는 큰 창이 8개 뚫려 있다. 평면은 8각형인데 주보랑과 갤러리의 6개 벽에도 창문을 세 개 두었다. 반원 제단에도 세 개의 넓은 창이 있고 이 창을 묶는 커다란 아치 위에도 작은 창이 세 개 있다. 그런데 이 창에서 들어온 빛은 하나가 되어 주보랑 위를 비추지만, 다시 세 개의 아치로 나뉜다. 성당의 모든 곳에 뚫려 있는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공간에 개방감을 주고, 내부 공간 전체에 다채롭고 신비한 빛과 그림자의 효과를 만들어 낸다. 이렇게 이 성당은 삼위일체의 하느님을 증명하려는 듯 ‘3’이라는 모티프를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그 ‘3’은 하나로 묶인다. 삼위일체의 하느님은 나뉘지 않는 한 분이시라는 뜻이다.
제단은 길게 주보랑을 관통하여 건물 밖으로 돌출해 있다. 평면은 중심형인데도 방향성을 가진 제단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하면 중심형이 깊이를 갖게 되고, 전례 상의 여러 움직임에도 대응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제단의 양 측면과 주보랑은 세 아치로 만든 아케이드로 열려 있고, 제단은 계단 두 단을 두고 회중석에 접하고 있다. 반원 제단 좌우에는 제의와 성경을 보관하는 방 ‘디아코니콘(diaconicon)’과, 빵과 포도주를 준비하는 방 ‘프로테시스(prothesis)’을 두었다. 성소도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단 옆 위에는 아벨과 멜키체덱의 희생이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희생 제단에 바쳐지고 있고, 그 위로 이를 기쁘게 받아들이시는 성부의 손이 그려져 있다. 마찬가지로 벽, 기둥, 창, 지붕이라는 건축 요소와 빛도 아리우스파의 수도의 심장부에서 삼위일체 하느님의 본질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었다. 곧 산 비탈레 대성전은 삼위일체와 육화의 신비 그리고 어떤 하나가 다른 둘에 포함되어 있다는 상호 내재성인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를 건축으로 표현한 탁월한 성당이다.